13일 필리핀 바탕가스 지역의 화산 폭발 장면. AFP/연합뉴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66㎞가량 떨어진 바탕가스섬의 ‘탈 분화구’에서 화산이 폭발해 붉고 뜨거운 용암이 분출하고 검은 화산재가 필리핀 상공을 뒤덮으면서 마닐라국제공항을 오가는 항공편이 무더기 취소됐다. 필리핀 당국은 “화산 활동이 더 지속될 것”이라며 수만명에게 대피 및 경계 경보를 내렸다.
13일 필리핀 당국은 전날부터 탈 분화구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났으며, 이 화산으로 약하게 흔들리는 지진이 최소 75차례 감지됐다고 발표했다. 뜨거운 용암이 상공 500m 위로 치솟았다. 당국은 “화산암 재가 하늘에 빽빽하게 들어차고 있으며, 탈 분화구에서 반경 14㎞ 안에서 화산 활동에 따른 쓰나미(지진해일)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화산은 지난해 말부터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12일 갑자기 활동을 개시해 뜨거운 증기를 분출하고 화산재와 화산암석 파편들이 지상으로부터 15㎞ 상공까지 날아올랐다. <에이피>(AP) 등 외신들은 “화산이 폭발한 주변 지역 하늘을 회색의 두꺼운 화산재가 뒤덮고,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수많은 미세한 분진 돌멩이들이 여기저기 온통 비처럼 뿌렸다”고 전했다. 주민 비엔베니도 무사(56)는 이 통신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강력한 지진으로 집이 다 무너져내리고 머리 위에 분진 암석 파편이 떨어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분화구에서 번개 불길이 자욱하게 뿜어져 나오면서 검은 구름이 사방에 퍼져나갔다. 탈은 전세계에서 가장 작은 화산이지만 필리핀의 24개 활화산 중 한곳이다. 지진과 화산 폭발이 곧잘 일어나는 태평양의 ‘불의 고리’ 안에 놓여 있다.
바탕가스섬과 근처 카비테주에서 주민 3만여명이 대피소 38곳으로 옮겨졌다. 또 ‘위험 지역’에 사는 주민 4만5천명에게도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 필리핀 재난당국은 “상황이 더 악화하면 최소 20만명에게 강제 대피명령을 내릴 것”이라며, 몇시간이나 며칠 안에 “가공할 폭발력을 가진 화산 분출”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탈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화산재는 북쪽으로 100㎞가량 날아가며 하늘을 온통 뒤덮었다. 회색 재구름이 마닐라까지 도달해 마닐라국제공항까지 자욱하게 뒤덮으면서 500여편의 국제·국내선 항공 운항이 무더기 결항됐다. 분화구 주변 수십㎞ 전역에서 관공서와 학교가 모두 문을 닫았다. 사상자는 아직 보고되지 않고 있다.
당국은 이번 화산 폭발의 위험 등급을 “임박한 위험스러운 분출”을 뜻하는 4단계로 격상했다. 안토니오 보르나스 필리핀 기상청 화산연구원은 “분출이 언제쯤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1970년대에 이번과 유사한 화산 활동이 재개됐던 때에는 약 넉달간 화산 폭발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탈 화산’ 지대는 필리핀에서 두번째로 강력한 활화산 지역으로, 1572년 이래 33번 분출한 바 있다. 1977년 10월에도 폭발했으며 1911년 최악의 화산 폭발 당시에는 1300여명이 사망했다.
당국이 바탕가스섬과 주변 해안 지역의 모든 주민에게 총대피령을 내렸지만 일부 주민은 수송 수단이 부족한데다 화산재로 시야가 막히는 바람에 바탕가스 섬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바탕가스 발레테타운의 윌슨 마랄리트 시장은 “일부 주민은 생업과 돼지·소떼를 구하려고 활화산 공포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다. 대피소로 피한 일부 주민도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나서고 있어 말리는 중”이라고 지역 라디오방송에 말했다. 발레테는 이 섬의 해안선에 있는 타운이다. 이 지역 상점마다 모두 철시하고 나무들은 두터운 분진 잿더미로 뒤덮였으며 주요 도로는 검은 화산재로 진흙탕으로 변했다. 바탕가스섬은 탈 화산 분화구가 “항상 위험한 지역”인데도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수년 전부터 거주해왔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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