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인도 수도 뉴델리 북부의 한 마을에서 소방관들이 시민권법을 두고 힌두 민족주의 세력과 무슬림 집단의 폭력충돌로 불타버린 집과 자동차들을 보고 있다. 뉴델리/AFP 연합뉴스
인도 수도 뉴델리를 혐오와 불관용, 폭력과 공포가 휩쓸었다.
26일 뉴델리에선 나흘째 힌두 민족주의 세력과 무슬림 소수 집단이 충돌한 폭력사태로 34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다. 힌두 민족주의자인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정부가 종교·인종적 소수 집단도 시민권 취득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시민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무슬림(이슬람교도)을 배제한 게 발단이었다. 힌두 민족주의자들과 그에 반대하는 무슬림 및 지지세력이 찬반 시위를 벌이다가 격렬하게 충돌한 것이다. 양쪽의 충돌은 소수 무슬림에 대한 힌두 극우집단의 일방적이고 끔찍한 테러에 가까웠다.
뉴델리 동북부의 바잔푸라, 마우지푸르, 카라왈 나가르 등 일부 지역에서는 26일 총리실 국가안보보좌관이 폭력사태 현장을 직접 방문해 질서 회복을 호소한 뒤에도 저녁 늦게까지 방화와 폭동이 이어졌다고 <뉴델리티브이>(NDTV)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뉴델리 경찰은 이날까지 폭력 혐의자 130여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시작된 충돌이 며칠째 격화하면서, 무슬림들은 힌두교도들의 공격을 피해 모스크로 피신하기 바빴으며 병원에는 총격과 산 뿌리기, 흉기 휘두르기, 몽둥이 구타, 돌 던지기 등 힌두교 군중의 무차별 폭력으로 중경상을 입은 무슬림이 200명 넘게 밀려들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현지에서 보도했다. 사망자 상당수는 성난 힌두교도 군중을 피해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가 목숨을 잃었으며, 무슬림이 피신한 빈집들은 약탈과 방화의 대상이 됐다.
아쇼크 나가르 지역에서 폭도들의 공격을 받은 한 모스크는 건물 외벽이 불에 그을렸고 미나레트(모스크 첨탑)에는 인도 국기와 힌두 극우집단을 상징하는 오렌지색 깃발이 내걸렸으며, 이슬람 경전 코란이 찢어진 채 흩날렸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지난 24일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무슬림 주민 모하마드 주바이르(37·가운데)가 힌두 민족주의 구호를 외치는 군중들에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고 있다. 뉴델리/로이터 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유혈 폭력사태가 나흘 연속 이어지고 사망자가 스무 명이 넘어선 26일에야 처음으로 양쪽의 자제와 화합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모디 총리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상황을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며 “델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항상 평화와 형제애를 유지하길 호소한다. 최대한 빨리 평온과 정상을 되찾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
▶관련기사: 인도 총선, 집권당 압승…힌두·민족주의가 카스트 눌렀다)
그러나 모디 정부의 2인자인 아미트 샤 내무부 장관은 유혈 사태의 예방 또는 조기수습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뉴델리티브이>는 전했다. 중도 좌파 성향의 야당 정치인인 아르빈드 케지리왈 뉴델리 수석장관은 이날 “경찰로는 상황이 통제되지 않는다”며 정부에 군 투입과 통행금지 시행을 요구했다.
이번 폭력사태를 두고 인도의 집권 국민당(BJP)은 26일 “우리는 어떤 폭력도 지지하지 않는다”며, 야당이나 제3세력 배후론을 폈다. 국민당 대변인은 “이번 혼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도 방문(24~25일)에 맞춰 야당이 인도의 이미지를 흐릴 목적으로 100% 미리 준비된 것이었다”며 “24시간 안에 모든 게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집권 인도국민당이 주도하는 정당연합인 국민민주연합(NDA)은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연방하원의 절반을 훨씬 넘기는 압승을 거뒀으며 모디 총리는 5연임을 이어가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