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맨 오른쪽)이 28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2+2 회담’(AUSMIN) 이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동안, 메리스 페인 오스트레일리아 외무장관(맨 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연설을 듣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중 대결이 고조되는 가운데, 남중국해에서 세력 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최근 남중국해를 무대로 오스트레일리아 등 관련국과 군사적으로 ‘반중국 포위망’을 구현하려고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핵심 국가인 필리핀이 반중국 포위망에 ‘구멍’을 내는 행보를 보이고 중국 역시 격렬히 대응하고 있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28일 워싱턴에서 외교·국방 연석회담(2+2회담)을 열어, 중국과의 긴장 고조에 대응하는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다짐했다. 양국 장관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중 강경책에 대한 명확한 지지를 선언한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양국 장관들은 공동성명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다윈에서 군사작전 확대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의 전통 동맹국이기는 하나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미군 정규군 주둔이나 미군 상설기지가 없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전 미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선언하면서 2012년 다윈에 미 해병 병력의 순환배치를 시작했다.
다윈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남중국해와 가장 가까운 항구 도시다. 2차대전 때 일본의 공격으로 미국 극동사령부가 있던 필리핀에서 탈출한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다윈에 사령부를 차리고 반격을 시작하기도 했다. 즉 남태평양 지역에서 아시아로 가는 전진기지다. 미국은 다윈에서 군사연료 보급지를 세우려 한다. 일본과 인도 등 생각이 같은 국가들과 함께 다윈에서 합동훈련도 고려하고 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오스트레일리아에 미국이 계획하는 중거리미사일 배치도 압박했다. 에스퍼 장관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미사일을 환영할 것이냐’는 질문에 “동맹국들은 우리가 앞으로 몇년 동안 펼치려고 하는 능력과 전략을 최대한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거리미사일 배치 계획을 밝혔다. 중거리미사일은 비용과 정확도가 뛰어나 냉전 시대 때 미-소 군축회담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다. 미국이 유럽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 하자, 유럽 국가에서 대규모 항의시위가 일었다.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이 자국에 배치되면, 소련의 보복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수용하겠다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는 아직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지난해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기지로 기능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지난 주 필리핀해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전함 5척이 미국의 항모전단 및 일본 구축함과 함께 연합훈련에 참가한 것을 환영하며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양국의 군사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이런 훈련들은 (군사) 상호 운영성을 강화할뿐만 아니라 베이징에 명확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국제법이 허용하고 우리의 동맹과 동반국들의 권리를 지키려는 곳이라면 우리는 비행하고, 항행하고, 작전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최근 미국이 박차를 가하는 서방 영어권 국가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반중연대의 선봉에 섰다.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에 대한 조사를 미국에 이어 촉구했고,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중국 통신장비 회사 화웨이 배제도 수용했다. 이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의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중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보리 덤핑 판정, 쇠고기 수입 금지, 중국 학생의 유학 금지령을 발동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전통 동맹국인 미국 사이에서 조심스런 행보를 보여오다가, 지난해 강경 우파 스콧 모리슨 총리가 집권하면서 급격히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
이날 회담에서 양국 장관들은 중국을 겨냥한 격렬한 비난 표현들을 삼가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공산당의 야욕, 해로운 행동” 등으로 비난했다. 린다 레이놀즈 오스트레일리아 국방장관도 중국을 겨냥해 “우리 지역에서 해로운 행동 저지” 등으로 비판했다.
21일(현지시각) 남중국해의 미 유도미사일 순양함 안티템 갑판 위의 해군.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를 앞세워 남중국해에서 반중국 포위망을 꾸리려고 하나, 필리핀은 전날 이에 구멍을 내는 입장을 시사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27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서는 중국과 대립하지 않고, 미군기지 문제에서는 미국의 입장에 순순히 동조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외교가 최선의 방책”이라며 이는 그 대안은 전쟁인데 자신은 그를 감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서필리핀해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우리도 주장한다”며 “중국은 무기를 가졌고, 우리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그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며 “우리는 전쟁으로 가야만 하나, 나는 할 수 없고, 나는 이를 기꺼이 인정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전쟁을 할 수 없으니, 영유권 문제에서 외교적 타협을 보겠다는 것이다.
미군기지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군 주둔을 허용치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이 시기에 기지를 설치한다고? 이는 핵무기를 반입할 것이기 때문에 전쟁 발발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전쟁이 발발하면, 필리핀 민족의 절멸이 확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의 현안인 방문군협정(VFA)에 대해서는 진전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방문군협정은 미군이 필리핀에서 훈련을 하고 연합훈련에 참가할 수 있게 하는 조약이다. 그는 올해 초 20년이 된 이 협정을 파기할 것이라고 통보했다가, 지난 6월 파기결정을 중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필리핀은 미국이 반중연대의 고리이자 대결장으로 삼으려는 남중국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다. 필리핀은 유엔 국제중재재판소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제소해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근거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억제하는 한편 중국해 밖으로 중국의 군사력 진출을 막는 지정학적 의미를 갖는다. 동남아 국가 중에서 미군의 대규모 군사력과 기지를 주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통해 남중국해 외곽에서 포위망 구축에 시동을 거는 이 때, 남중국해 중앙에 있는 필리핀이 ‘구멍’을 내는 형국이 된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8일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과 통화에서 미국이 “무분별한 대결을 도발”하고 있다며 “좌충우돌하고 무지막지한 미국에 대해 중국은 단호하고도 이성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