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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타이 수만명 참석 대규모 반정부 시위…금기인 ‘왕실 개혁’ 언급

등록 2020-08-17 17:39수정 2020-08-18 02:34

16일 방콕에서 최소 1만2000명 시위
군사정부 주도 의회 해산 등 요구
젊은층, 금기인 왕실 개혁까지 언급
16일 타이 수도 방콕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16일 타이 수도 방콕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군사 쿠데타 세력이 6년째 집권하고 있는 타이에서 지난 16일 대규모 반정부, 민주화 요구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 내에선 현 군부 세력을 용인했다는 이유로 ‘금기’에 속하는 왕실 개혁 촉구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타이 수도 방콕의 민주기념탑에서 16일 오후 1만명(경찰 추산, 집회 주최 쪽 추산 2만~3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현지 언론 <방콕 포스트>가 17일 보도했다. 타이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지난 3월26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최대 규모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날 시위대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들고 △민주화 활동가 탄압 중지 △군부 중심 의회 해산 △새 헌법 제정을 위한 기구 구성 3가지 핵심 사항을 요구하며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고 현지 신문 <방콕 포스트>가 17일 보도했다.

타이에선 방콕과 치앙마이 등에서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달 넘게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총선 뒤에도 군사 정권이 바뀌지 않는 데 대한 실망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2017년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집권 기반을 마련한 것도 모자라, 지난 2월 헌법재판소가 ‘정당법’ 위반을 이유로 야당인 ‘미래전진당’을 강제해산한 것이 시민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미래전진당은 지난해 쿠데타 이후 처음 치러진 총선에서 젊은층의 지지를 받아 3당으로 도약한 당이다. 당시엔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위가 주춤했으나, 2014년 쿠데타 뒤 캄보디아로 망명했던 반정부 인사가 지난 6월 프놈펜에서 대낮에 괴한에게 납치된 뒤 행방불명된 데 이어, 이달에도 반정부 활동가 3명이 체포되면서 시위는 다시 격화되고 있다.

특히 16일 집회에선 “우리 꿈은 헌법에 진정으로 근거한 군주제를 갖는 것”이란 말까지 터져 나왔다고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지난 10일, 타이 탐마삿대학에서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왕실 재산과 국고 분리, 왕실을 비판하는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 철폐를 민주화 요구에 포함한 데 이어, 현 군부 세력을 용인한 왕실에 대해 ‘금기’를 깨고 개혁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타이에선 형법상 국왕을 모욕한 죄로 기소된 이는 최대 15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젊은층이 중심이 된 시위대는 ‘세 손가락 경례’ 등 다양한 대중문화적 요소를 시위에 사용하고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할리우드 영화 <헝거 게임>에 저항의 상징으로 등장한 제스처로, 2014년 쿠데타 뒤부터 시위대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또 햄스터를 본떠 만든 일본 만화 캐릭터인 ‘햄타로’의 애니메이션 주제가 중 “해바라기씨가 제일 좋아”라는 부분을 “(군사 정권은) 납세자들 돈이 제일 좋아”라고 바꿔 부르며 정권 비판에 나서고 있다.

젊은층이 대거 참여한 이번 타이 시위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시위를 벌였던 2000년대 시위와는 양상이 다르다. 이번 시위는 ‘자유국민운동’(옛 자유청년운동)이라는 단체가 주도하고 있지만 조직 자체는 느슨하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의 아임 신펭 교수(정치학)는 <비비시>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시위 주도 단체들이 “대학생 단체와 관련 조직이 느슨하게 연결된 형태”라며 지도부가 명확하지 않은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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