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설을 열흘 이상 앞둔 19일에도 호찌민(사이공) 역은 서둘러 열차편을 이용해 귀성에 나선 승객들로 벌써부터 북적이고 있다. 호치민/윤우옥 통신원
교통 열악·고비용에 30~40시간 고생 감수하며 민족 대이동
한국계 학습지 회사에서 교재개발 담당으로 일하는 투위융(23)은 설을 3주 앞두고 9개월 다닌 첫 직장에 사표를 냈다. 설을 전후해 27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열흘간의 휴가를 받았지만 융에게는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호치민으로 이주한 융의 가족은 고향인 북부 하노이를 가기 위해 차표를 구하려 했지만 겨우 18일에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다. 온 가족이 4년 만에 나선 길이라 융은 혼자만 빠질 수도 없어 사표를 냈던 것이다. 다행히 한국인 사장이 연차로 대체하고 사표를 반려해줘 홀가분한 마음으로 18일 귀성길에 올랐다.
유교적 전통의 베트남에선 음력설이 가장 큰 명절이다. 올해 설 공휴일은 28~31일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대체로 1~2주일을 쉰다. 따라서 귀성전쟁도 한국·중국에 못지 않다. 호찌민에서 일하는 북부 출신 노동자 가운데 70~80%는 고향을 찾아나선다.
귀성 열차표는 지난해 10월 예매되자마자 동이 났다. 호찌민에서 하노이행 편도 요금만 50만~80만동(3만~5만원)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4년제 대학 졸업자 초임이 1백만~150만동(6만~9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일년 내내 벌어서 설 때 다 쓴다’는 베트남 속담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기차표가 귀하다보니 암표가 역 주변에서 공공연하게 거래된다. 암표는 20~30%의 웃돈을 얹어주어야 하지만, 도로사정이 열악한 버스 여행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기 때문에 서로 사려고 아우성이다.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귀성길은 보통열차로 36~40시간, 특급열차로 30~32시간이 걸리는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쎄트’라고 불리는 귀성버스표 가격은 30만~40만동으로 조금 싸지만 시속 50㎞ 이하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이틀은 족히 걸린다. 정원초과가 일상화돼 귀성버스는 ‘죄수 후송차량’이라는 뜻의 ‘쎄트 귀성버스’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악명이 높다. 짐짝처럼 다뤄지는 승객들은 이틀 동안 차안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이런저런 선물보따리를 싸들고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의 마음은 1년 번 돈을 다 쓴다고 해도 즐겁기만하다.
호찌민/윤우옥 통신원 kwoomtle@hotmai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