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아시아·태평양

“우리를 새·닭처럼 죽이고 있다”…미얀마 ‘야만의 학살극’

등록 2021-03-28 22:31수정 2021-03-29 08:06

‘국군의 날’ 대규모 시위, 군부 강경 진압
14살 소녀 숨지고 5살 아기도 총 맞아
미 국무장관 “소수 위해 국민 희생시켜”
한국 등 12개국 합참의장도 비난 성명
유엔 인권보고관 “말은 공허” 행동 촉구
미얀마 ‘국군의 날’인 27일(현지시각)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쿠데타 이후 최대인 1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군경이 시위대는 물론 민가에까지 총격을 해 어린이들도 다수 희생됐다. 이날 최대 도시 양곤에서 숨진 한 남성의 가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양곤/로이터 연합뉴스
미얀마 ‘국군의 날’인 27일(현지시각)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쿠데타 이후 최대인 1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군경이 시위대는 물론 민가에까지 총격을 해 어린이들도 다수 희생됐다. 이날 최대 도시 양곤에서 숨진 한 남성의 가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양곤/로이터 연합뉴스

미얀마 ‘국군의 날’인 27일(현지시각) 군경의 강경 진압으로 쿠데타 발생 이후 54일 만에 최대인 110명 이상이 숨졌다. 군경이 시위대뿐 아니라 민가에도 총격을 퍼부어 1살 아기가 눈에 고무총탄을 맞고 14살 소녀가 숨졌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 12개국 합참의장이 28일 미얀마 군경의 치명적 무력 사용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국제사회가 허울뿐인 규탄을 넘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설 때라는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미얀마 현지 인터넷 매체인 <미얀마 나우>는 시위대 수만명이 이날을 ‘저항의 날’이라 이르며 최대 도시 양곤과 2대 도시 만달레이 등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 군경 유혈진압으로 최소 114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데페아>(DPA) 통신 등 외신은 28일에도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이어졌고, 전날 숨진 이들에 대한 장례식이 곳곳에서 열렸다고 전했다.

미얀마 국군의 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5년 3월27일 아웅산 장군 등이 일본군에 맞서 무장항쟁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로, 원래 명칭이 ‘저항의 날’이었는데 군부가 ‘국군의 날’로 명칭을 바꿨다. 지난달 1일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은 이날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연설에서 “군은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국민 모두와 손을 잡으려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 시위대가 27일(현지시각) 양곤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미얀마 시위대가 27일(현지시각) 양곤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민 아웅 흘라잉의 말과 달리 군부는 26일 국영방송인 <엠아르티브이>(MRTV)를 통해 “앞선 비극적 죽음으로부터 머리와 등에 총격을 받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며 시민들에게 노골적인 위협 메시지를 보냈다. 27일에는 전날 위협한 대로 실탄과 고무탄 등을 쏘면서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시위대가 설치한 바리케이드도 불을 질러 무력화했으며, 시위대를 찾는다며 주택가를 급습해 시민들을 공격했다. <미얀마 나우> 등 현지 언론은 만달레이에서 40살 남성이 가슴에 총을 맞은 뒤 산 채로 불태워졌다고 주민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네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숨지기 전 “엄마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군경은 특히 아기와 어린이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양곤 외곽에서 한살배기 여자 아기가 집 앞에서 고무총탄에 눈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또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5살 유아도 만달레이에서 군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위독하다고 전했지만, 사망 여부는 보도가 엇갈리고 있다. 만달레이주 메이틸라에서는 14살 소녀 판 이 퓨가 숨졌다. 그의 어머니는 군인들이 집에 접근하는 소리를 듣고 모든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한발 늦었다. 어머니는 <비비시>에 “딸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처음에 그냥 미끄러져 넘어진 것으로 생각했는데 딸의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고 말했다.

미얀마에서는 지난 23일 7살 소녀가 집에서 아버지 품으로 뛰어가다가 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등 어린이의 희생이 잇따르고 있다. 시민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27일까지 423명(<로이터> 추산 440여명)이 숨진 것이 확인됐는데, 그 가운데 미성년자 20여명이 포함됐다. 만달레이주 민잔시 주민인 투 야 조는 <로이터>에 “그들(군경)은 우리를 새나 닭처럼 죽이고 있다. 심지어 우리들 집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군은 이날 오후 소수민족 카렌족이 다수 거주하는 카인주 타이 접경지대에서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을 가해 최소 2명이 숨졌다고, 민간단체인 카렌평화지지네트워크의 대변인이 밝혔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일부 의원이 꾸린 연방의회대표자위원회(CRPH) 임시정부가 소수민족 무장단체와의 연대를 발표한 가운데, 공습 몇시간 전 카렌족 무장단체인 카렌민족동맹(KNU)이 이 지역 미얀마군 초소 한 곳을 점령했다고 발표한 데 따른 조처로 보인다.

국제사회 곳곳에서는 미얀마 군부를 강도 높게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버마(미얀마) 보안군이 자행한 유혈사태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는 군부가 소수를 위해 국민의 목숨을 희생시킬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블링컨 장관은 “깊은 애도를 유족들에게 보낸다”며 “버마의 용기 있는 국민은 군부의 공포정치를 배격한다”고 덧붙였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도 트위터에 “미국은 버마 군부가 저지른 혐오스러운 폭력과 쿠데타에 대한 책임을 계속해서 지울 것”이라고 적었다. “버마 국민에 대한 잔혹한 폭력에 맞서 모든 나라가 한목소리를 내기를 촉구한다”고도 덧붙였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 12개국 합참의장도 28일 “미얀마 군부와 경찰의 비무장 시민에 대한 치명적 무력 사용을 비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7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국군의 날을 맞아 열린 열병식에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네피도/AP 연합뉴스
27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국군의 날을 맞아 열린 열병식에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네피도/AP 연합뉴스

그러나 국제사회가 말뿐만 아니라 본격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비판도 비등하고 있다. 유엔 미얀마 특별보고관 톰 앤드루스는 성명에서 “미얀마 군부가 국민을 대량학살하는 동안, (국제사회의) 비난이나 우려의 말들은 미얀마인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 정도 규모의 위기를 검토하고 조처를 해야 할 적절한 장소다. 만약 유엔 안보리가 행동할 수 없다면 미얀마 관련 국제 긴급 정상회의를 즉각 소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미얀마 군부의 자금줄이 되고 있는 석유와 가스 부문 수출을 차단하고 무기 수입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베트남, 라오스, 타이 8개국은 27일 미얀마 국군의 날 행사에도 대표단을 파견했다. 러시아는 이들 중 최고위급인 국방부 차관이 참석했고,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러시아는 진정한 친구”라고 추어올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찬성하지 않으면, 미얀마 군부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본격 제재는 어렵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북한, 러시아에 170㎜ 자주포·240㎜ 방사포 지원” 1.

“북한, 러시아에 170㎜ 자주포·240㎜ 방사포 지원”

곰인형 옷 입고 ‘2억 보험금’ 자작극…수상한 곰 연기, 최후는 2.

곰인형 옷 입고 ‘2억 보험금’ 자작극…수상한 곰 연기, 최후는

“미사일 120발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 공격 3.

“미사일 120발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 공격

이스라엘군, 레바논 수도 공습…헤즈볼라 수석 대변인 사망 4.

이스라엘군, 레바논 수도 공습…헤즈볼라 수석 대변인 사망

‘58살 핵주먹’ 타이슨 판정패…30살 어린 복서는 고개 숙였다 5.

‘58살 핵주먹’ 타이슨 판정패…30살 어린 복서는 고개 숙였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