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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중국은 ‘공동부유’란 유령을 붙잡을 수 있을까

등록 2021-09-13 18:46수정 2021-09-14 02:31

덩샤오핑 공동부유 처음 꺼내
낙후된 생산력 탓 ‘선부론’ 주력
GDP 36년만에 112배 커졌지만
상위 10% 자산, 하위 20%의 36배

시진핑 2017년 불평든 폐해 지적
성장 과실 나눌 ‘공동 부유’ 깃발
일각 “공동 빈곤으로 갈수도” 경고
지난 9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남성이 재활용 쓰레기 앞에 앉아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지난 9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남성이 재활용 쓰레기 앞에 앉아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카를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려보자. ‘하나의 유령’이 중국을 배회하고 있다. 옛 중국의 모든 지도자들, 곧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장쩌민과 후진타오,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주창한 시진핑까지 모두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동맹을 맺었다. 바로 ‘공동부유’란 유령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7일 중앙재경위원회 제10차 회의에 참석해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며,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인민 중심의 발전 사상을 유지하고, 높은 수준의 발전을 통해 공동부유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중국 안팎에선 ‘공동부유’의 정체를 놓고 이례적인 열띤 논쟁이 촉발됐다.

지난해 말 이후 중국 규제당국은 알리바바·텅쉰·디디추싱 등 거대 정보통신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과, 사교육 업계를 비롯해 제약 없이 뻗어나가던 민간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부유’가 전면에 내세워지면서, 중국의 ‘변심’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른바 “부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을 구제할 것”이란 얘기다.

<중국경제주간>의 보도를 종합하면, ‘공동부유’는 “전체 인민이 열심히 노동하고 서로를 도와 최종적으로 풍족한 생활 수준에 도달하는 한편, 양극화와 빈곤이 없는 보편적 풍요를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공동부유는 시 주석이 만든 ‘구호’가 아니다. 연원은 마오쩌둥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핵심 개념과 달성 경로를 제시한 것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자’로 불리는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은 1985년 3월 열린 전국과학기술공작회의에서 “사회주의의 목표는 전국 인민의 공동부유이지, 양극화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공동부유를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한 기록이다. 당시 그는 “물질문화에 대한 인민의 수요와 낙후된 생산력 사이의 괴리”를 이른바 ‘주요 모순’으로 규정했다. 배고픔이 만연했던 시절이다. 그가 개혁·개방에 나선 이유다.

덩샤오핑은 공동부유를 ‘단계적 과정’으로 여겼다. 모두가 한꺼번에 평균적인 발전을 이루려 하면, 실질적으론 “공동낙후, 공동빈곤”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가 “여건이 마련된 지역과 개인 먼저 부유해지면, 이들이 낙후한 지역과 개인을 도와 최종적으로 공동부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선부론’이다. 그는 “동시에 사회주의적 정책을 채택해 양극화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혁·개방 초기였던 1985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9016억위안이었다. 2020년엔 101조5986억위안에 이르렀다. 36년 사이에 112배가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과실은 고루 분배되지 않았다.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중국이 소득 불평등 정도를 가늠하는 지니계수(인구 비율과 소득 점유율 사이의 상관관계.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한 것)를 마지막으로 공식 발표한 것은 지난 2000년이다. 유엔개발계획(UNDP) 등이 중국의 지니계수를 0.465로 평가하는 것도 당시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미국(0.480)에 근접한 수치다.

중국 사회의 불평등은 3가지 층위로 나눌 수 있다. 동부 연해지역과 내륙 등 지역 간 격차와 지역 내 도시와 농촌 간 격차, 그리고 계층 간 격차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올해 초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국 도시지역의 가구당 가처분 소득은 4만3834위안으로, 농촌 가구(1만7131위안)의 2.5배를 웃돈다.

계층 간 격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국가통계국의 가구당 총자산 분포 자료를 보면, 상위 10%(1511만5천위안)의 평균 자산이 하위 20%(41만4천위안)의 36.5배나 됐다. 특히 하위 40%가 전체 자산의 8.8%를 차지한 반면, 상위 20%는 63%를 점유했다.

시 주석이 공동부유론을 체계화한 것은 2017년 10월 집권 2기의 문을 연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 때다. 당시 시 주석은 현 시기 중국의 주요 모순을 “갈수록 늘어나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인민의 수요와 불균형하고 불평등한 발전의 차이”로 규정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고,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해 공동부유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19차 당대회 이후 중국 당국은 공동부유와 관련해 이렇다 할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시 주석 집권 2기 시작과 함께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대외 환경이 급박해진데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중국 경제가 출렁인 탓이다. 공동부유의 대전제인 ‘탈빈곤’과 ‘전면 소강사회’ 실현을 내세웠지만, ‘낮은 수준’의 성과란 점엔 이견이 많지 않다.

공동부유는 지난해 가을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원회의(19기5중전회)에서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중국 공산당은 당시 회의에서 1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으론 ‘쌍순환’을, 2035년 장기 발전 계획 목표론 ‘공동부유’를 강조했다. 쌍순환도 ‘소득 증가→ 소비 진작→ 내수 중심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공동부유와 맥이 닿아 있다.

시 주석은 중앙재경회의에서 공동부유 달성을 위해 1차(계층·지역 간 소득 격차 축소)·2차(사회복지 등 정부 이전소득 확대)·3차(기업 등 비정부 부문의 기여 등) 분배를 통해 격차를 줄이겠다는 복안을 내놨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양극화 해소 방안과 맞닿아 있다.

실제 시 주석은 “공유제를 주체로 1-2-3차 분배가 조화를 이루는 속에서 조세·사회보장·이전지급 등을 조정하고, 중간 소득층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또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리고, 고소득층의 소득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불법 소득을 단속해, 중간 소득층이 크고 저소득층·고소득층은 작은 올리브형 분배 결과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미국 등 서구 일각의 주장처럼 공동부유를 내년 3연임을 앞둔 시 주석의 대중 추수적 ‘좌경화’만으로 해석하는 건 지나친 감이 있다. 중국 사회가 오랜 기간 준비해온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첫걸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시장을 우선하는 쪽에선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자칫 공동빈곤으로 갈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는다. 반면 거대 인터넷 기업 단속은 독점 금지를 통한 진입장벽 제거, 사교육 통제는 교육 형평성 확대를 위한 조처란 평가도 있다.

시 주석의 ‘3차 분배’ 주장에 알리바바·텅쉰·핀둬둬 등이 거액을 내놓고 있는 것도 자발성 여부와 관계없이 “소득 분배 과정에서 하나의 보완적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시장경제 국가에서 부를 재분배하는 데 동원하는 재산세·상속세·자본이득세 등이 중국엔 없다는 점에서 “거대 기업의 기부금을 체납 세액 추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가계소득이 국내총생산의 80% 안팎인 서구와 달리 중국은 50% 수준이란 점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중국 경제 성장의 과실이 임금 인상 등으로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지기보다, 기업 영업이익 등으로 더 많이 흘러들어 갔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동부유를 위한 소득 재분배의 초점도 ‘1차 분배’에 맞춰져야 한다는 얘기다.

저임금 노동에 기대 초고속 성장을 해왔던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1차 분배에 대한 강조는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중국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결국 다시 ‘파이’를 키우는 것과 나누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성장이 둔화한다면 이미 ‘4억명’을 넘긴 중국 중산층이 동요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미 노동자·농민이 아닌 ‘중산층의 정당’에 가까워졌다. 정치적 민주주의 대신 경제적 풍요를 택한 이들 계층이 공산당 장기 집권의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이들이 흔들린다면, 공동부유로 가는 길도 험난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쉽지 않은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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