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총통부 인근에서 열린 노동계 집회에 참석한 국민당 지도부가 국민투표에 부쳐진 4대 안건에 모두 찬성할 것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대만의 향후 에너지·무역 정책 기조를 좌우할 공민투표(이하 국민투표)가 18일 치러진다. 차이잉원 총통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적 성격도 짙어 2024년 총통 선거의 전초전이라 할 내년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4일 <대만중앙통신>(CNA)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18일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중단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부지 이전 △총통·입법원 선거일로 국민투표일 변경 △4기 핵발전소 공사 재개 등 4개 안건에 대한 찬반 표결이 이뤄진다. 집권 민진당 쪽은 4개항 모두 반대, 제1야당인 국민당은 모두 가결을 주장하며 지지층을 설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차이잉원 정부는 지난해 가축 성장촉진제인 락토파민을 함유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허용했다. 이 문제가 미국과 추진 중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의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국민당은 인체 유해성 논란으로 인해 유럽연합(EU)은 물론 중국 본토에서도 ‘락토파민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 문제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에 따라 대만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문제는 물론 미-대만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고 짚었다.
둘째, 차이잉원 정부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명분으로 대만 북부 타오위안 지역에 액화천연가스 터미널을 짓고 있다. 국민투표를 발의한 환경단체 쪽에선 이 일대 해안 조류 암초 지대의 환경 파괴가 예상된다며 부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안건은 자연스레 세번째 안건인 4기 핵발전소 공사 재개와도 맞닿아 있다. 대만은 국민당 출신 마잉주 총통 시절인 2014년 신베이(뉴타이베이) 지역에 건설 중이던 룽먼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반핵 여론이 높아진 탓이다. 차이 총통 역시 2025년까지 탈핵을 목표로 한 에너지 정책을 추진했지만, 2018년 11월 국민투표에서 ‘반대’ 벽에 부딪혔다. 공사 재개 결정이 나면 차이 총통이 추진해온 ‘탈핵 정책’은 다시 한번 후퇴할 수밖에 없다.
넷째는 국민투표일과 총통·입법의원 선거 날을 일치시키는 문제다. 발의한 국민당은 “투표율도 높이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민진당에선 “10가지 안건에 대한 국민투표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면서 투표 시간 지연 등 부작용이 컸던 2018년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며 반대한다.
투표일이 다가오며 민진-국민 양당의 ‘세 대결’도 불을 뿜고 있다. 지난 12일 민진당은 서남부 타이난에서, 국민당은 수도 타이베이에서 각각 3만여명과 1만여명이 모인 집회를 열어 국민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엇갈린다. 대만민의기금회가 지난달 30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찬성 55.9%, 반대 36.5%)를 제외한 나머지 안건은 찬반이 팽팽히 맞서 있다. 차이 총통의 지지율 역시 지난해 1월 재선 당시(56.7%)에 견줘 떨어졌지만, 여전히 46.8%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민진-국민 양당의 주장과 달리 안건에 따라 가부가 갈릴 전망이다.
대만은 2003년 12월 만들어진 ‘공민투표법’에 따라 주요 법령과 정책 등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직전 선거 유권자의 0.01%에 해당하는 국민이 연서명해 제안한 뒤, 6개월 안에 유권자의 1.5%가 동의하면 정식 발의된다. 국민투표에서 가결되면 정부와 입법원은 후속 정책과 입법을 통해 결과를 반영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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