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7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 항구에서 선적을 앞두고 있는 수출용 자동차 모습. 옌타이/신화 연합뉴스
중국이 지난해 말 종료된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 따른 의무사항을 절반가량만 이행했다는 ‘최종 평가’가 나왔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폭이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터라, 미국 쪽이 보복 대응에 나설지 주목된다.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8일 보고서를 내어 “2년 전 체결된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 따라 중국은 지난해 말까지 무역전쟁 이전(2017년) 수입액을 기준으로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추가 구매하기로 약속했다”며 “하지만 중국의 합의 의무사항 이행률은 5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 연구소는 지난 2년간 중국의 1단계 무역합의 이행 상황을 추적해왔다.
구체적으로 보면, 대두 등 농산물 수입은 의무 이행률이 83%였던 반면,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분야에선 이행률이 3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서비스와 제조업 분야에서도 이행률이 각각 52%와 59%에 그쳤다.
특히, 중국의 2020년 미국산 제품 수입 총액은 1344억달러로 1단계 무역합의의 기준이 되는 2017년 수입액(1512억달러) 수준에도 이르지 못했다. 2021년에도 1544억달러 수입에 그쳐, 2017년 기준치를 간신히 웃돌았다. 1단계 무역합의에 따라 중국이 의무 수입해야 할 미국산 제품은 2020년과 2021년 각각 2279억달러와 2745억달러에 이른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소는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역사적’이라고 평가했던 1단계 무역합의 때 약속한 2000억달러 추가 수입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미 상무부는 이날 “2021년 상품·서비스 등 무역수지 적자가 전년보다 26.9% 늘어난 8591억달러(약 1027조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기존의 최고치였던 2006년의 7635억달러를 훌쩍 넘는 것이다.
무역수지 적자 증가는 지난해 미국 정부의 코로나19 지원금을 손에 쥔 소비자들이 여행이나 외식 대신 컴퓨터·게임기·가구 등의 제품 소비를 늘리면서 수출보다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에너지·식자재 등의 가격도 올라 미국의 수입 액수가 커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외국 관광객들과 학생들의 미국 내 서비스 분야 지출이 줄어든 점 또한 적자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전년보다 14.5% 증가한 3553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8년 기록한 4182억달러보다는 낮은 수치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 폭을 줄이겠다며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는데도, 지난해에는 적자가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만큼 소비 제품에서 미국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얘기다.
2년여에 걸친 무역전쟁을 봉합시켰던 1단계 무역합의를 중국 쪽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데다, 무역수지 적자 폭까지 크게 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로선 중국의 합의 이행 실패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응 조처는 합의 체결에 앞서 미국이 유예했던 156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보복관세(15%) 부과로 보인다. 당시 미·중 양쪽은 “합의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90일 안에 유예했던 관세를 다시 부과할 수 있다”는 점에 합의한 바 있다. 1단계 무역합의로 ‘휴전’ 상태로 들어갔던 미-중 무역전쟁이 재연될 수도 있는 상황이란 얘기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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