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윗날 베이징에선 세계 최대의 공연장 ‘국가대극원’(사진)이 문을 열었다. 톈안먼(천안문) 광장 서쪽에 들어선 ‘거대한 달걀’ 모양의 이 공연장은 ‘거대한 거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호사의 극치를 달린다. 2만개의 티타늄판으로 외벽을 장식했고, 입구까지 80m 길이의 수중복도를 깔았다. 공연장 내부는 ‘붉다는 것’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려는 듯 20가지가 넘는 붉은색으로 치장했다.
이날 개장 축하무대엔 마오쩌둥 전 주석이 사랑했다는 무용극 〈홍색낭자군〉이 올랐다. 1934년 하이난성에서 반봉건투쟁에 나선 여성들의 얘기를 극화한 이 무용극은, 66~76년 중국을 휩쓴 문화대혁명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공연물로 대접받고 있다. 마오 전 주석은 64년 인민대회당에서 초연된 이 무용극을 보고 ‘방향성과 예술성의 조화’라는 중국 문화의 금과옥조를 제시했다.
중국 건국 58주년과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을 앞두고 열린 이번 축하행사에선 경극·오페라·발레 등 중국의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는 거의 모든 공연예술이 선보였다. 2416석의 오페라 하우스, 2017석의 콘서트 홀, 1040석의 극장이 사실상 풀가동한 셈이다. 내년부터는 〈레미제라블〉 〈캣츠〉 같은 세계 최고의 뮤지컬들이 중국어로 각색돼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국가대극원은 요즘 중국에 불고 있는 ‘문화폭발’의 맹렬함을 상징한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문화적 위대함으로 빛내려는 이 문화폭발은 가히 혁명적이다. 공연장을 짓고, 박물관을 세우고,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막대한 돈이 소비되고 있다. 중국이 이젠 값싼 신발이나 불량 식품만을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하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문화대국 건설’을 주창하느라 바쁘다.
이 열기는 ‘중국의 얼굴’ 베이징의 모습까지 바꾸고 있다. 내년 올림픽을 앞둔 베이징에선 요즘 박물관 건립이 한창이다. 1949년 건국 당시 2곳에 불과했던 박물관이 최근 140곳으로 늘었다. 올 들어서만 7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영화 △골목 △편액 △사찰 △우표 등 주제도 다양하다. 중의약 제조업체인 퉁런탕(동인당)과 오리구이 전문점인 취안쥐더(전취덕), 차 전문점인 장이위안(장일원) 등도 각각 박물관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훼손된 문화재 복원과 보존 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중국은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약탈당한 위앤밍위앤(원명원)의 ‘청동 12지신상’을 최근 복원했다. 얼마전 말머리상 진품은 마카오의 도박왕 스탠리 호가 경매시장에서 82억원에 사들여 중국에 헌납했다. 내년에는 정문에 해당하는 창춘위앤이 원형 그대로 복원된다. 그동안 해외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조각상은 중국의 상처받은 문화적 자존심을 상징해왔다.
문화대국을 향한 중국의 열정은 세계적인 ‘문화전쟁’을 예고한다. 중국은 이미 중국어와 문화 확산을 위해 세계 곳곳에 공자학원을 세우고 있다. 진시황릉을 지키던 병마용은 미국과 프랑스, 영국을 돌며 관람객들을 끌어모으느라 바쁘다. 최근 웅장한 모습을 선보인 베이징 국제공항 제3터미널은 중국의 전통적 형상인 용을 닮았다. 그 용이 지금 ‘문화라는 여의주’를 물려 하고 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