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귀성객 안전 약속했다 압사 사고에 ‘곤혹’
50여년 만의 폭설로 상당수 지역의 교통·통신·전력망이 삽시간에 마비되면서 중국 지도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특히 귀성객들의 안전하고 조속한 귀향을 약속했던 원자바오 총리는 광저우역에서 한 여성노동자가 사람들에게 밟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머쓱한 처지가 됐다.
원 총리가 지난달 30일 광저우역에 들러 확성기를 들고 귀성객들의 조속한 귀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뒤, 철도부는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어 “폭설로 끊겼던 베이징~광저우 구간이 대부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그러자 수백만명의 귀성객들이 광저우역으로 몰려들어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명이 호흡 곤란을 일으켜 쓰러지고, 한 여성 노동자가 인파에 밟혀 숨졌다. 사고 순간에 광저우역에는 26만명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철도부가 원 총리의 약속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바람에 혼란이 가중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철도부의 발표와 달리 광저우역의 철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부 구간에선 다시 폭설이 내려 복구 작업에 애를 먹고 있었다. 귀성객들은 광저우역 진입을 막는 경찰을 향해 “사기꾼”이라고 욕을 퍼붓기도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번 폭설로 인한 대혼란은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발 당시 중국 지도부가 보여줬던 늑장대응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홍콩의 평론가 장화는 한 인터뷰에서 “중국 지도부가 위기 발생 초기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돼서야 심각성을 깨닫고 정치적 구호를 앞세워 총동원령을 내리는 수순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 폭설로 인한 경제적 피해에 대해서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훙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경제운행국 부국장은 피해지역이 남부에 한정돼 있다며 “폭설 피해가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초체력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김외현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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