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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기업 고발’ 여기자의 죽음

등록 2008-02-10 21:27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특파원리포트
지난달 28일 저녁 베이징의 한 뒷골목에서 귀가하던 젊은 여기자가 괴한에게 급습당했다. 가슴과 어깨에 여섯 군데나 깊은 상처를 입은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동맥을 잘린 듯 피살 현장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사건은 처음부터 미궁에 빠졌다. 골목길엔 가로등 하나 켜 있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다. 당시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한 주민은 “살려달라는 비명을 듣고 달려갔지만, 길바닥에 쓰러진 여자 외엔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여기자는 숨지기 10분 전 근처 상점에서 장을 봤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여기자가 일했던 <중국경영보>에서 곧바로 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했다. 동료들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며 그의 죽음에 흉악한 음모가 개입돼 있다고 주장했다. 한 간부는 ‘사악한 세력의 보복’이라는 수수께끼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가 숨지기 전날 자신의 메신저에 ‘찔려죽을 것’이란 대화명을 붙인 것도 의혹을 부추겼다.

중국 매체들은 그가 생전에 기업의 불투명한 세무처리 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했던 데 주목했다. 그는 이른바 ‘기업에 찍힌 기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에도 다국적 기업과 대형 호텔의 비리를 과감하게 폭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에서도 그의 죽음에 검은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이런 의혹은 한 공산당 지방간부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신문사에 경찰이 들이닥친 사건과 겹치면서 더욱 증폭됐다. 지난달 4일 <법제일보>의 주간지 <법인> 사무실에 랴오닝성 시펑현 당서기가 경찰을 데리고 쳐들어왔다. 시펑현 당서기는 <법인>이 근거없는 보도로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하고, 기사를 쓴 기자를 비방죄로 체포하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여론이 험악하게 돌아가자 중국 경찰이 진화에 나섰다. 베이징 공안국은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내어 이례적으로 수사 진행 상황을 공개했다. 경찰은 여기자의 지갑이 들어 있던 가방이 강탈당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단순 강도사건일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의 죽음이 사악한 세력의 보복이라는 근거없는 보도는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중국에서 언론의 고발은 여전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광저우에서 발행되는 <남방도시보>는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사실을 터뜨렸다가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는 사태를 겪었다. 당시 보도를 주도했던 한 간부는 공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수감됐다가 최근에야 겨우 풀려났다. 한 젊은 여기자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기업과 권력의 고발에 대한 대중의 ‘공포’와 ‘갈망’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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