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덕분에 덩샤오핑 눈에 들어 ‘출세 길’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티베트 사태로 또 다시 정치적 진로의 갈림길에 놓였다.
후진타오는 1989년 티베트 당서기 시절 티베트 독립요구 시위를 단호히 진압해 중국 최고 지도자로 가는 길을 닦았다. 후 주석은 1988년 고산병과 심장병을 앓던 우징화 티베트 서기의 뒤를 이어 티베트에 부임했다. 그는 다음해인 1989년 3월5일 라싸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에 직면해, 이를 냉정하게 진압했다. 그는 국무원의 계엄령이 떨어지자 직접 철모를 쓰고 거리에 나가 유혈진압을 지휘했다. 그의 단호한 시위 진압은 출세의 길을 열어줬다. 당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그의 결단을 높이 평가해 정치적 후광을 베풀었다. 그가 변방의 지도자에서 대륙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그에게 최고지도자의 발판을 만들어준 티베트 독립요구 시위가 이번에는 미묘한 시점에서 재현됐다. 티베트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선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 전인대는 후 주석의 집권을 재확인하고, 후계구도를 드러내는 정치적 행사다. 후 주석이 지난해 제17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7전대)에서 자신의 정치철학인 과학적 발전관을 당장에 삽입함으로써 거둔 정치적 승리를 굳히는 자리다.
후 주석이 주석직에 재선출된 15일에도 라싸뿐만 아니라 간쑤성 샤허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거친 공방이 이어졌다. 티베트가 후 주석의 잔치판에 돌을 던지고, 후 주석과 중국 지도부의 ‘영광’을 가리는 황사가 된 셈이다.
이번 사태가 과거처럼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된 그로선 티베트 당서기 시절처럼 선택지가 단순할 수 없다. 그는 2006년 티베트를 연결하는 칭짱철도가 개통했을 때도 티베트를 방문하지 않고,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만큼 티베트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얘기이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