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파는 처녀’
특파원리포트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어여쁜 빨간 꽃. 이 꽃을 사시면, 설움 많은 가슴에도, 새 봄빛이 안겨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가 중국의 봄을 설레게 하고 있다. 15일 베이징을 시작으로 톈진·상하이·난징·칭다오 등 12개 도시를 도는 이 처녀를 보려는 중국인들의 예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열리는 첫 공연의 일반석은 이미 보름 전에 거의 매진됐다. 한 장에 680위안(약 9만5천원)이나 하는 좋은 좌석의 입장권도 속속 팔려나가고 있다.
<꽃파는 처녀>는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이 만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재창작한 작품이다. <피바다> <당의 참된 딸> <금강산의 노래> <밀림아 이야기하라>와 함께 5대 혁명가극으로 꼽힌다. 일제 강점기에 좁쌀 두 말을 빌렸다가 지주의 머슴으로 전락한 꽃분이네의 비참한 삶이 혁명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그린 북한의 ‘고전’이다. 1972년 첫 공연 이후 40여개 나라에서 1400여차례나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중국에선 ‘한류’의 원조로 통한다. 1970년대 영화로 제작돼 중국에서 엄청난 관객을 끌어모았다. 문화대혁명의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있던 중국인들에게 꽃파는 처녀의 서정성은 가히 충격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꼬깃꼬깃 접어넣어둔 돈을 꺼내 입장권을 사는 이들의 모습은 당시 극장 앞에선 흔한 풍경이었다. 매표소 근처에선 손수건을 파는 상인들이 장사진을 치기도 했다.
<꽃파는 처녀>가 대성공을 거두자 <금희와 은희의 운명> <꽃피는 마을> <한 간호사의 이야기> 같은 북한 영화들이 물밀듯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대도시에선 북한 여성들의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을 본뜬 중국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식당에선 <사과 풍년> <아름다운 내 나라> 같은 북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중국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오늘날 한류의 확산에 못지 않은 파급력을 보였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이런 향수는 <베이징만보>가 최근 공모한 ‘내 기억 속의 꽃파는 처녀’라는 감상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35년 전 나는 서북부의 한 시골에서 살았다. 10월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꽃파는 처녀 입장권을 구해오셨다. 당시 어머니는 만삭의 몸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해 영화를 보러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평소 온유하던 모습과 달리 고집을 부려 기차를 탔다. 그날 밤 내 동생이 태어났다. 우리 가족과 꽃파는 처녀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
<꽃파는 처녀>의 중국 순회공연은 올해 양국 문화 교류의 꽃이다. 류샤오밍 평양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해 12월 최창일 북한 문화성 부상을 만난 자리에서 이번 공연을 ‘북-중 문화 교류의 일대 사건’이라고 추켜세웠다. 북한은 이번 공연에 공훈예술가와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배우 50여명을 파견했다. 무대에 중국어 자막기를 설치하고, 영화의 명장면도 간간이 넣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계획이다.
중국은 핵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북한과 혈맹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엔 대만과도 경제협력을 통한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북한 역시 대중 관계를 유지하며 미국과의 적대적 과거를 청산하려 하고 있다. 핵신고를 둘러싼 갈등도 최근 싱가포르 합의를 통해 진전을 본 상태다. 그러고 보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긴장이 감도는 남북관계가 참 유별나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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