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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특파원리포트] ‘바링허우’ 민족주의엔 반성이 없다

등록 2008-05-04 22:30수정 2008-05-04 23:54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특파원리포트
‘고속성장하는 대국’ 자부심으로 가득한
신인류들 맹목적 애국주의 탐닉…
인터넷 무장 무차별 공격

1919년 5월4일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반제·반봉건 투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흔히 ‘5·4운동’이라 부르는 이날을 중국은 ‘청년절’이라는 이름으로 성대하게 기린다. 후진타오 주석은 올해로 89주년을 맞는 이날을 하루 앞둔 3일 베이징대를 찾아 애국·진보·민주·과학이라는 5·4운동의 정신이 중국의 번영에 지울 수 없는 공헌을 했다고 찬양했다.

5·4운동은 티베트 사태 이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중국 민족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확산된 이 ‘올림픽 민족주의’는 티베트 사태에 대한 외국의 지지를 내정 간섭이라고 비난하고, 이에 동조하는 외국 기업에 가차없이 불매운동을 선포한다는 점에서 5·4운동의 애국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민족주의를 이끄는 세대가 1980년대 태어난 이른바 ‘바링허우’(八零後·80년후)다. 성화 봉송 과정에서 오성홍기를 들고 반중국 시위대를 압도한 이들의 조직력과 참여의식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 앞 광장을 태극기로 물들인 한국의 ‘붉은 악마’에 비견할 만하다. 붉은 악마가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다면, 이들의 구호는 ‘파이팅 올림픽’이다.

바링허우 세대는 중국의 고속성장이 낳은 ‘신인류’다. 경제가 해마다 10%씩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란 이들은 문화대혁명의 암울한 시절을 기억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역사적 부채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에게 중국은 성장하는 대국이고, 무한한 자긍심의 근원이다. 이들은 인터넷의 전파력을 이용할 줄 아는 중국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성화를 봉송하던 장애인 주자를 공격한 티베트인을 공개수배한 한 누리꾼의 글이 삽시간에 퍼진 것도 이들의 인터넷 구사능력 때문이었다. 까르푸 불매운동으로 프랑스 정부의 ‘백기’를 받아낸 것 또한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선배들과 달리 ‘중국에 대한 반성’이 없다. 5·4운동을 이끌었던 중국의 젊은 세대는 반외세를 외쳤지만, 그들에겐 당시의 중국 역시 ‘개혁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1989년 톈안먼(천안문) 시위를 이끌었던 젊은이들은 중국의 정치개혁을 요구했다. 하지만 바링허우 세대는 티베트에 대한 관용을 촉구한 한 중국인 유학생의 말에도 살기를 드러낸다.

이런 맹목적인 애국주의는 ‘풍요로운 세대’의 일반적 특징인 개방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들어설 공간을 지워버렸다. 올림픽을 지지하면 애국자고, 비판하면 매국노가 되는 신종 매카시즘은 이들의 자유주의적 싹을 위협한다. 이는 어쩌면 중국 정부가 원하는 것이다.


최근 대만에서 숨진 작가 보양이 쓴 <추악한 중국인>의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장독나라’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결혼을 앞둔 환자는 자신을 ‘폐병 3기’로 진단한 의사에게 잔치판에 재를 뿌린다며 목청을 높인다. 의사가 기침과 발열, 각혈 증상을 들어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다. 의사는 결국 외국인들도 그런 증상을 보이는데, 왜 나만 죽을놈으로 몰아붙이느냐는 환자의 항변에 손을 들고 만다.

바링허우 세대가 지금 그 환자를 닮아가고 있다. 홍콩 <빈과일보>는 올림픽을 앞두고 극단적 민족주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중국을 향해 “포용성 없고 좁은 마음이 중국인의 절대적 비하와 절대적 오만이라는 두 극단적인 성향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극단적 민족주의는 바링허우 세대의 ‘장독’이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기자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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