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장소 어슬렁거리는 시위 확산
한국의 촛불시위에 비견되는 ‘산보’라는 새로운 시위문화가 중국에서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9일 펼침막이나 팻말, 구호, 노래도 없이 오로지 특정 장소를 어슬렁거리는 느긋한 시위인 산보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침묵의 거리시위’라고 할 수 있다. 쓰촨성 청두의 블로거 ‘노란 복숭아’는 지난달 초 청두 시내에서 열린 산보 시위에 참여했다. 당국의 대형 정유공장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그는 인터넷 메신저나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공지된 시간에 맞춰 거리로 나갔다. 거리엔 이미 수백여명의 산보객들이 나와 있었다. 이들의 산보는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산보객들은 거리를 걸으면서 휴대전화 메시지로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들고나온 나무집게로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노란복숭아는 “이번 산보는 성공적이었다”며 “산보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가는 모두 참여자들의 뜻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산보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체로 고학력·고소득층에 속한다. 건강·환경 등 주로 생활 이슈를 제기하는 이들은 블로그, 채팅,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동지’를 규합한다. 산보는 조직이 아니라 이슈 중심으로 이뤄지며, 이런 특징이 짧은 시간에 많은 이들을 동원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푸젠성 샤먼에선 대형 화학공장 건설에 반대하는 대규모 산보가, 지난 1월엔 상하이 중심가 난징루에서 자기부상열차의 전자파 피해를 우려하는 산보 시위가 벌어졌다.
산보는 집회의 자유가 제한된 중국에서 집단적 요구를 안전하게 표출하려는 시민들의 ‘발명품’이다. 중국 헌법은 시위 권리를 보장하지만, 공안기관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 산보는 이런 법의 구속에서 자유롭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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