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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협상서 수출 확대 포기하며 인도에 동조
신흥·저개발국들과 양자무역·경제협력 노림수
신흥·저개발국들과 양자무역·경제협력 노림수
“중국이 개발도상국들과 연합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지난 7년 동안 진행돼 온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결렬된 다음날인 30일, <월스트리트 저널>이 이렇게 보도했다. 개도국의 농산물 긴급수입관세(SSM) 발동 요건을 놓고 벌어진 격론에서, 협상 막판까지 침묵을 지켰던 중국이 미국 등 선진국 대신 인도의 손을 들어준 데 따른 것이다.
최근 몇 해 동안 자유무역 문제를 놓고 인도와 견해를 달리했던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다소 뜻밖으로 비칠 수도 있다. 이미 세계 2위 수출국이 된 중국은 선진국 시장에 진입하려는 인도 등 개도국과는 처지가 상당히 다르다. 게다가 중국은 비농산품 관세가 9%로, 인도(16%) 등에 견줘 시장이 개방돼 있다. 이에 비춰보면 중국은 개도국보다는 전반적인 관세를 낮추고자 하는 선진국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인도 편에 섰다.
세계 무역 무대의 ‘거인’으로 떠오른 중국이 자국의 수출 확대 기회까지 포기하면서, 저개발국들과의 정치적 연대를 선택한 것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분석했다. 전직 세계무역기구 관리로, 싱가포르 경영대학에서 통상법을 강의하는 헨리 가오 교수는 “중국 지도부는 개도국과의 친선을 위해, 경제적 이득을 양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세계무역기구 협상 프로세스 밖에 있는 나라들과의 교역 강화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평등과 상호주의에 기반해, 양자 무역과 경제 협력을 더욱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의 말에서도 이 점은 확인된다. 이런 전략에 기반해 중국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이웃 신흥 경제 국들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의 저개발국들과도 교역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미국으로의 수출은 급감했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미국과 유럽 등 ‘빅파워’가 주도하는 무역기구 체제 참여에 따른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가장 큰 교역 이슈는 각종 세이프가드 증가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선진국의 반덤핑 조처 확대 등인데, 다자간 회담에선 이런 조처 철회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이뤄진 바가 없다. 여기에 최근 식량 위기가 고조되면서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인도 등과의 공조 필요성도 높아졌다. 베이징의 법률자문회사 메이어 브라운 제이에스엠(JSM) 베이징 지부의 매튜 매칸키는 “이미 미국과 유럽 시장이 대부분 열린 상태에서 중국을 유인할 당근책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 제네바 회담은 선진국 주도의 세계 무역질서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을 비롯한 브라질, 인도 등 신흥 경제국의 등장으로, 미국의 주도 아래 유럽연합과 일본 등이 이끌었던 무역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마샬펀드의 조 기넌은 “중국은 최근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이번 회담은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우리는 지금 새로운 권력 축의 출현을 보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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