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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20돌 앞두고 누리꾼·지식인 “재평가” 요구
“폭란 규정 홀대 말고 이젠 민주 운동 대접을”
“폭란 규정 홀대 말고 이젠 민주 운동 대접을”
4일은 천안문(톈안먼) 광장을 가득 메웠던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인민해방군의 무력에 의해 진압된 지 20돌이 되는 날이다. 그날의 총성은 ‘인민의 아버지’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굽어보는 광장을 피로 물들였다. 이후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힘입어 경제대국으로 떠올랐지만, 그날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지난달 10일 베이징에선 자그마한 비공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6·4 민주화 운동 연구’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베이징대 교수와 사회과학원 연구원, 문인 등 수십명이 참석했다. 오는 4일 천안문(톈안먼) 민주화시위 20주년을 앞두고 중국 당국이 일체의 기념활동을 금지한 상황에서 열린 이들의 ‘은밀한 토론’은 한 참석자의 블로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토론회는 참석자들의 ‘고해성사’로 시작했다. 쳰리췬 베이징대 교수는 ‘미완성의 역사 임무’라는 주제발표에서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희생을 막지 못한 죄책감과, 학자로서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지 못한 부끄러움을 토로했다. 추이웨이핑 베이징영화학원 교수는 천안문에 대한 지난 20년간의 침묵과 은폐가 중국의 도덕적 기준을 훼손했다고 자책했다.
천안문의 기억을 되살리는 양심의 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중국 당국이 강요하는 ‘집단적 침묵’의 벽을 뚫고 나온 날카로운 가시들이다. 이들은 천안문 민주화시위를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한 중국 공산당의 공식 보고서를 폐기할 것을 요구하며, 천안문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결코 조화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당시 아들을 잃은 장셴링은 지난달 17일 베이징의 집에서 같은 처지의 부모들과 함께 추도회를 열었다. 그의 거실에는 자식들의 사진과 함께 “정의를 지키는 것이 희망이다”라고 쓰인 추모문이 내걸렸다. 이들은 추모사에서 “우리의 용기있고, 지적이고, 영웅적이며, 무고한 아들딸들아! 우리는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너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천안문의 기억은 인터넷에서 불특정 다수를 만난다. 무력진압 희생자들의 부모들은 얼마 전부터 자식에 대한 기억과 자식을 잃고 살아왔던 고통을 자신들의 사이트에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다. 당시 학생시위를 주도하다 반혁명 선동 및 정부전복 음모로 수감됐던 왕단 역시 자신의 비밀 블로그를 통해 누리꾼들과 당시의 기억을 교류한다.
그럼에도 현실세계에서 천안문의 기억은 점점 엷어지고 있다. 많은 중국 학생들에게 6월4일은 달력에 적힌 한 날짜에 불과하다. 대부분 학생들의 관심은 좋은 직장을 얻고, 많은 돈을 버는 일에 쏠려 있다. 천안문 광장도 요즘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기념사진을 찍는 카메라 소리로 시끄러울 뿐이다. 광장 옆 상가에선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찍은 디브이디(DVD)가 손님을 기다린다.
망각을 강요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도 여전하다. 마자오쉬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19일 정례브리핑에서 “1980년대 말 중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풍파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우리 당과 정부는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며 “우리가 걸어온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중국 인민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증명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은 아직도 천안문 희생자들의 수와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 30일 오후 베이징 완안 공원묘지. 천안문 민주화시위 당시 인민해방군의 총격으로 숨진 이들이 많이 묻혀 있다는 이곳에서도 당시의 기억을 되짚는 이들은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 이곳에선 당시 인민해방군의 진압 장면을 찍다 숨진 왕판디(19)의 유가족들이 조촐한 추모식을 열었다. 기억을 지키려는 이들의 추모는 계속되고 있다.
베이징/글·사진 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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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오후 중국 베이징 완안 공원묘지. 천안문 민주화시위 희생자들이 많이 묻혀 있다는 이곳의 묘비석과 분향소가 고요한 적막 속에 잠겨 있다.
천안문 민주화 시위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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