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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덩샤오핑 특구’ 선전시 3848배 성장…소외층 껴안기 ‘시험대’

등록 2009-09-29 20:37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이자 ‘개혁개방 1번지’인 광둥성 선전시 중심의 선난다다오에 덩샤오핑의 대형 초상화 앞에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에 “당의 기본노선(개혁개방 노선)은 1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1992년 ‘남순강화’ 어록이 쓰여 있다.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이자 ‘개혁개방 1번지’인 광둥성 선전시 중심의 선난다다오에 덩샤오핑의 대형 초상화 앞에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에 “당의 기본노선(개혁개방 노선)은 1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1992년 ‘남순강화’ 어록이 쓰여 있다.
[중국 건국 60돌 용의 승천] ③ 덩샤오핑 유산의 명암
GDP 30년새 6765억위안 돼…‘남순강화’로 개방 지속
첨단·서비스·금융산업 시동…교육·의보 등 복지정책도





19살 소녀 웡춘셴은 1982년 선전에 첫발을 내디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 광둥성 산터우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선전에 진출한 홍콩 완구회사의 노동자 모집 광고를 봤다. 선전에서 까다로운 시험을 치른 지 2~3일 뒤 합격통지가 왔다. 외할머니는 걱정하며 말렸다. “선전은 자본주의랑 가까워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선전이 중국의 첫 경제특구로 지정된 뒤 2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는 선전에서 ‘농민공(농민 호구를 가진 도시 노동자) 여공 1세대’로 공장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10~12시간씩 일한 뒤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했지만, “어린 시절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장난감이 곳곳에 가득해 즐거웠다.” 당시 선전에서 일한다는 것은 ‘특혜’였다. 중국 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월 18위안, 수십년 동안 교사로 일한 부모님이 월 40~50위안을 받던 그 시절, 그는 80위안을 받았다.

지난 3일 선전 난산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웡춘셴(46)은 이제 대형 유리회사의 회계 책임 간부로 일하고 있다. 87년 선전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도 농민공으로 출발해 현재는 세무서 간부가 됐다. 웡은 “당시 선전에 오지 않았다면 나에겐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나는 선전과 같이 성장했다”고 말한다.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로 불리는 광둥성 선전에는 수많은 ‘웡춘셴’이 있다. 중국 최초의 시장경제 실험이 벌어졌던 이 도시는 수많은 중국인들에게 돈을 벌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줬다. 1980년 인구 3만명도 안 되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선전(당시 바오안현 선전진)은 이제 1200만~1400만의 인구가 몰려 살고, 1인당 평균소득이 1만3000달러가 넘는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변신했다. 선전시의 국내총생산(GDP)은 경제특구로 지정된 1980년 1억760만위안에서 2007년말 6765억위안으로 3848배 급증했다. <선전상보>의 기자 량잉은 “홍콩 기업이 선전에서 처음 호텔을 열었을 때 선전 사람들은 해고라는 게 뭔지 몰라 문화충돌이 일어날 정도였지만, 빠르게 시장경제에 적응해 갔다”고 말한다.

선전은 덩샤오핑의 자식 같은 도시다. ‘주자파’(자본주의파)로 몰려 여러 차례 숙청당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서 1978년 개혁개방 노선을 선포한 덩샤오핑은 1980년 홍콩과 맞닿아 있는 어촌 선전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또 천안문(톈안먼) 사태 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된 중국 지도부 내에서 개혁개방 포기 움직임이 일던 1992년, 선전에 와 ‘남순강화’를 통해 ‘흔들림 없는 개혁’을 강조한 것도 그다.

이제 그는 선전 롄화산공원 정상에서 동상이 되어, 초고층 건물들이 숲을 이룬 첨단도시로 발전한 선전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다. 뒤편에는 “선전의 발전은 나의 개혁개방 정책이 정확했음을 증명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고, 주변에는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반면 선전의 극심한 빈부 격차는 덩샤오핑의 호언장담을 무색하게 하는 초고속 발전의 어두운 그림자다. 인구의 70~80% 이상이 외지인이고, 이 중 대부분이 농민공이다. 호구제도가 엄격한 중국에서 이들은 원칙적으로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아이들을 데려와 교육시키는 것도 어렵다. 룽강, 바오안 등 외곽지역에서 이른 새벽 숙소를 나서 지친 모습으로 공장으로 향하는 농민공들의 거대한 흐름은 시 중심의 화려함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제 선전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선전시는 경제발전으로 쌓인 풍부한 재정을 바탕으로 2006년부터 농민공들에게 거주증을 발급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선전에서 교육시킬 수 있도록 했고, 2009년부터는 농민공들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또 부정부패와 행정 비효율 수술에 나서 지난 5월에는 ‘행정 3분제’라는 행정개혁 모델을 선보였다. 행정권한을 정책결정, 집행, 감독 등 세 부분으로 나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하는 싱가포르 모델을 채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외지에서 몰려온 값싼 노동력을 대량 고용해 단순임가공업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산업구조를 첨단산업과 서비스업 중심으로 구조조정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표적 첨단 전자업체인 화웨이나 최근 전기자동차 기술을 선보이며 급성장하고 있는 비야디(BYD)는 모두 이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한 기업들이다. 최근에는 홍콩, 마카오와의 연계를 강화하면서, 금융산업 중심지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과거 선전의 자본주의 실험이 성공을 거둬 중국 전체 경제발전의 선봉장이 됐던 것처럼, 선전의 ‘제2의 개혁’도 중국의 변화를 이끌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익명을 요구한 선전시사회과학원의 한 연구원은 “아직까지는 선전의 실험들이 뚜렷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30년 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했을 때는 모두가 혜택을 봤지만, 현재의 새로운 개혁에 대해서는 이익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입는 집단의 이익충돌이 극심하기 때문에, 개혁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용을 하늘로 날렸다. 30년이 지난 지금, 용은 낡아버린 껍질을 깨고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다시 몸부림치고 있다.

선전/글·사진 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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