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리(93)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좌파복고·개인숭배 경계…개혁개방 촉구 뜻 분명
지난 9일 백발의 노인이 휠체어를 탄 채 중국 톈진에 모습을 드러냈다. 톈진시의 장가오리 서기, 황싱궈 시장 등 현지의 최고 지도부가 총출동해 그를 맞았다.
중국 공산당 8대 원로로 불리는 완리(93·사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2년 만에 공개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 등 중국 공산당 원로가 총출동했던 지난 1일 건국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던 완리는 이날 아들 완지페이 중국무역촉진회 회장을 데리고 톈진을 찾았다. <중국신문방> <톈진일보> 등은 이날 톈진역, 진완광장, 샤오바이러우음악광장 등 톈진 주요 지역을 시찰한 완리가 “톈진의 발전 이념이 뚜렷하고 업무 분위기도 탄탄하다”며 톈진의 개혁개방을 격려했다고 전했다.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전·현직 지도부가 모두 국경절 열병식에 참석하는 관례를 깨고 완리가 건국 60주년 행사에 불참한 뒤 떠들썩하게 톈진 시찰에 나선 것은, 그의 속내를 표현하려는 계산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대 샤예량 교수는 12일 홍콩 <핑궈일보>에 “현재 중국 공산당 내에 좌파 복고, 개인숭배 등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완리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를 연상시키는 이번 행보를 통해 실사구시적 개혁개방의 길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 것”이라며 “‘민을 괴롭히고 재산을 낭비하는’ 국경절 행사의 허례허식에도 반대의 뜻을 밝혔다”고 해석했다.
덩샤오핑은 천안문사태 이후 개혁개방에 반발이 커지자 1992년 선전, 상하이 등을 방문해 ‘남순강화’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 완리도 이번 행보를 통해 지체되고 있는 정치, 사회적 개혁개방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완리는 중국 8대 혁명 원로 중 유일한 생존자이자, 덩샤오핑의 최측근으로 개혁개방 정책의 선구자였다. 1970년대 덩샤오핑과 함께 숙청됐다 복권된 뒤 1978년 안후이성 당서기로서 농촌의 소득을 각 농가에 분배해주는 ‘포산도호’ 정책을 추진해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또한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퇴임하면 최고지도부의 관저인 중난하이 밖으로 나가는 관례에도 불구하고 완리는 퇴임 뒤에도 계속 중난하이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완리는 평생 청렴하게 살아 따로 살 수 있는 집이 없어서, 지도자들이 그를 중난하이에 계속 머물게 했다”고 전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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