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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승려-중국군, 찌든 민심 ‘구호경쟁’

등록 2010-04-18 18:45수정 2010-04-19 11:05

중국 칭하이성 지진 피해 현장에서 15일 주민들이 티베트 불교 승려로 보이는 부상자를 붕괴된 건물 더미에서 구해내고 있다.  위수/신화 연합뉴스
중국 칭하이성 지진 피해 현장에서 15일 주민들이 티베트 불교 승려로 보이는 부상자를 붕괴된 건물 더미에서 구해내고 있다. 위수/신화 연합뉴스
빈곤한 소수민족 문제 분출
티베트 갈등 둘러싼 신경전
17일 오전 중국 칭하이성 위수티베트자치주 제구진 남쪽의 산중턱에서 회색 연기 기둥이 하늘로 솟아 올랐다.

대지진으로 숨진 이들중 이날까지 발견된 1000여구의 주검이 화장터의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 가족들의 통곡과 수백명 승려들의 기도 소리가 희생자들의 영혼을 하늘로 올려보냈다. 티베트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새가 주검을 쪼아먹는 천장(天葬)을 해야 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들이 숨져 화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망자 중 숨진 이가 급증해 18일 오후까지 사망자는 1706명, 실종자도 256명에 이르렀다.

대지진 닷새째, 숨진 이들은 떠났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힘겨운 생존이 남았다. 폐허로 변한 집의 흔적 속에서 쓸만한 가재도구를 찾고 있는 이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주변 지역에 친지가 있는 많은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위수를 떠나고 있다.

18일 아침 제구전의 한 이재민촌에서 소녀 차라모(15)의 가족을 만났다. 차라모는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면서 10식구 중 4명이 숨졌고, 2명은 며칠째 추위 속에 잠을 잔 뒤 병이 났다”고 했다. 사촌 여동생 춘리예(9)는 지진으로 사흘 가까이 묻혀 있다 이틀 전 구조됐지만 충격으로 힘없이 땅바닥에 누워 있다. 정부에서 천막과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지만 그의 가족은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 “받으러가면 사람들이 강탈하듯 앞다퉈 빼았아가기 때문에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들에게 지진보다 무서운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그림자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 차라모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한달 500위안을 받았다. 동생 춘리예는 상점에서 일하면서 한달 100위안(약 16000원)을 벌었다. 이들 둘다 학교에 다녀보지 못했다. 티베트자치주의 창두에서 2년 전 “입에 풀칠하기 위해” 제구진으로 온 친척 아저씨 짱야(30)는 하루 50위안씩 받고 공사장에서 일했지만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날이 많았다.

중국의 경제중심지인 연해지역에서 수천㎞ 떨어진 소수민족 지역인 이곳에는 별다른 산업이 없다. 일자리도 없다. 그나마 모든 것이 지진으로 사라졌다. 중국 정부는 초원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이 도시에 정착하는 것을 독려해 왔지만, 막상 도시로 온 유목민들은 별다른 소득원이 없다. 구걸로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대지진 이후, 잊혀졌던 위수티베트자치주에 전국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민감한 소수민족 지역에서 벌어진 재난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지진 이튿날인 15일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원자바오 총리가 직접 방문해 구호작업을 독려했고, 남미 순방 일정을 단축해 급히 귀국한 후진타오 국가주석도 18일 제구진을 방문해 피해 주민들을 위로했다.

 중국 지도부의 적극적 관심 속에 전국에서 몰려든 구호물자와 구호인력이 제구진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군복을 입은 해방군과 무장경찰, 그리고 붉은 전통복장의 티베트 승려(라마) 수천명의 ‘구호 경쟁’이 제구전의 새로운 풍경이 됐다.

 17일에도 삽을 든 승려들은 거대한 행렬을 이룬 채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조작업을 벌이고, 숨진 이들을 위로하며 경을 읽었다. 제구사의 승려 거라이단쩡은 “우리 사원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우리보다는 주민들을 먼저 구하려고 지진이 일어난 날부터 계속 무너진 집들로 가 한명이라도 더 생존자를 찾으려는 구조작업을 벌여왔다”고 했다. 티베트자치주와 쓰촨 등 인근 티베트인 집중 지역 곳곳에서도 많은 승려들이 지원물자를 싣고 와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승려들은 급식소를 꾸려 식사시간이 되면 주민들에게 음식도 나눠주고 있다.

 이에 질새라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 소방구조대원, 자원봉사자들이 굴삭기 등 중장비, 생명탐지 장비와 구조견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해 구조와 재건 작업에 한창이다. 이들은 각자의 소속 지역과 단위를 붉은 깃발에 큼지막하게 써서 내 걸고 있다. 1만여명의 병력이 몰려들면서 소도시 제구진은 거대한 병영으로 변했다.

 정부의 적극적 지휘 아래 이번 지진은 중국 인민의 단결을 보여주는 거대한 의식의 무대가 되고 있다. 티베트 신화에서 ‘지구상 마지막 낙원’으로 등장하는 위수 지역은 수천곳의 티베트 사원이 위치한 종교 중심지이며, 몇년 전부터 티베트의 자치를 요구하는 승려들의 시위가 벌어졌던 지역이다. 지난해 신장에서 벌어진 유혈시위 이후 소수민족 문제에 극히 민감한 중국 정부에게 이번 지진은 재난구조와 함께 또다른 정치적 과제를 안겼다.

박민희 기자
박민희 기자
정부의 지원 활동에 대해 이곳 티베트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가족들과 함께 노숙중인 장주(71)는 “힘든 상황이지만, 지진 이후 정부에서 음식을 풍족하게 나눠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주민은 “중국 정부가 이전에도 우리에게 준 것이 없고, 지금도 준 것이 없다. 여기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채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수민족의 복잡한 문제들이 감춰져 있다 지진과 함께 뛰쳐나왔다. 승려와 해방군, 누가 더 이곳 티베트인들의 마음을 얻게 될까.

위수(칭하이)/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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