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리루이 전 공산당 중앙조직부 부부장, 후지웨이 <인민일보> 전 편집장
전직 고위 간부들 “언론환경 악화” 비판 공개서한
검열제도 폐지 촉구…‘5중전회’ 앞두고 파문 일듯
검열제도 폐지 촉구…‘5중전회’ 앞두고 파문 일듯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35조가 보장한 언론·출판·집회·결사·이동·시위의 자유가 실행되지 않고 있는 것은 ‘거짓민주’이며, 세계 민주 역사에서 부끄러운 사건이다.”
지난 12일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공개서신이 중국 인터넷에 등장했다. 서한을 작성한 이들이 반체제인사가 아닌, 개혁적 성향의 중국 공산당 전직 고위 간부들이라는 점은 이례적이고 의미심장하다. 마오쩌둥의 비서였던 리루이(사진 왼쪽) 전 공산당 중앙조직부 부부장, 후지웨이(오른쪽) 전 <인민일보> 편집장, 리푸 전 <신화통신> 부사장, 중페이장 전 중앙선전부 신문국장 등 23명의 공산당 원로들이 실명으로 발기인으로 나섰다. 이들은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앞으로 보내는 이 서신에서 출판심사제도(검열제도)를 폐지하고 진정한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공산당의 올해 최대 정치행사인 17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7기5중전회)의 15일 개막이 코앞에 다가온 민감한 시점에, 옥중 반체제인사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중국 지도부가 고심중인 상황에서 원로들의 이번 요구가 중국 정치개혁에 얼마만큼 압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3일 현재 중국 인터넷에선 이 글이 삭제됐지만, 일부 누리꾼(네티즌)들에 의해 비밀스럽게 옮겨지고 있다.
이들 원로는 특히 최근 관영언론들이 원자바오 총리의 정치개혁 연설 내용들마저 삭제해 보도한 것을 강하게 비난하며, 중앙선전부 등 공산당의 언론통제기구를 ‘검은손’으로 지목했다. 원 총리가 지난 8월21일 선전에서 “정치체제 개혁이 없으면 경제개혁의 성과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최근 한 달 새 7번이나 정치개혁을 강조했지만, <신화통신> 등의 보도에선 이 내용이 빠진 채 보도됐다. 공개서한은 “중앙선전부가 무슨 권리로 공산당 중앙위원회나 국무원보다 더 높은 곳에 섰느냐”고 따져 물었다.
또 성명은 현재 중국의 언론환경은 “영국 식민지 시절의 홍콩보다도 못하고 영국에 비해 315년 뒤졌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8개항의 요구를 통해 △언론이 정부·당 기관에 예속되는 시스템 철폐 △임의적 기자 체포 금지 △인터넷 게시글 임의적 삭제 중단 △당역사에 권력자들의 잘못도 기록 △홍콩, 마카오 출판물 중국내 출판 허용 등을 요구했다.
이번 공개서한은 중국 지방정부의 이주정책을 고발하는 책을 냈다가 지난 8월 공안에 임의로 체포돼 30일 만에 풀려난 작가 셰차오핑 사건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기인의 한 사람인 잡지 <왕스웨이헌>의 총편집인 톄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최근 10여년 동안 중국의 언론환경은 더욱 악화됐다”며 “이미 500명 이상으로부터 실명으로 서명을 받았는데 90% 이상은 공산당원”이라고 말했다.
15일 개막하는 공산당 5중전회에선 정치개혁 논의가 주요 의제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지만, 서구식 정치개혁과는 거리가 먼, 공산당 통치 아래서 부정부패 척결과 법치, 투명성 등을 강조하는 ‘선치’(좋은 통치)의 개념이 등장할 것이라고 중국 관영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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