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84) 전 국가주석이 러시아 엔지니어 키레프의 회고록에 서문을 썼다는 기사를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언론들이 8일 일제히 보도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달부터 중국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는 ‘장쩌민 사망설’을 진화하려는 정치적 캠페인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9일 보도했다.
키레프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뒤 1954년부터 4년간 중국의 창춘 제1자동차공장 건설을 위해 옛 소련에서 파견된 엔진 전문 엔지니어였으며, 장 전 주석은 키레프와 함께 일했던 인연으로 그를 회고하는 서문을 썼다. “그의 고국에서건 중국 땅에서건 키레프는 변함없이 일에 열심이었고 특별한 성과를 거뒀다”는 내용이다. 14년 전 사망한 키레프를 회고하는 ‘소련의 기술자 키레프의 중국 감정’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키레프가 중국인들에게 특별히 유명한 인물도 아니고 별다른 계기가 없는데도 장 전 주석이 서문을 썼다는 이유로 7일 조어대(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고, 관영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중국과 홍콩의 인터넷에는 10월 초부터 장 전 주석이 이미 사망했다거나, 위중한 상태라는 소문들이 돌고 있었다. 장 전 주석은 지난 4월22일 상하이엑스포 개막을 2주 앞두고 리펑, 주룽지 전 총리 등과 함께 위정성 상하이시 당서기의 안내를 받으며 엑스포관을 참관한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중국 최고지도부인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9인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하이방의 ‘맹주’ 격인 장 전 주석의 건강문제는 2012년 차기 지도부 구성을 위해 고심중인 중국 최고지도자들 사이에서도 극히 민감한 이슈다.
1989년 천안문(톈안먼) 민주화시위 당시 학생들에게 온건한 입장을 보이다 숙청된 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이어 총서기를 맡아 2005년 5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약 16년 동안 중국 최고 지도자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장 주석은 대중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편이다. 시장경제를 지향한 급속한 경제개혁을 추진해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발전시켰지만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부정부패를 확산시켰다는 불만 때문이다.
중국 전·현직 지도자들의 건강 문제는 ‘1급 기밀’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장 전 주석의 사망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중국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치평론가인 진중은 장 전 주석이 실제로 사망했다면 중국 중앙정부가 적절한 방식으로 공개했을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장 전 주석의 와병 사실을 숨길 수는 있겠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다면 정부는 하루 이내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주간지 <아주주간>은 지난 10월8일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발표된 뒤 ‘장쩌민 사망설’이 돌기 시작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노벨상에서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해석도 있다며, 10월11일 장 전 주석이 이화원을 둘러봤다는 소식도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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