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전 국가주석
전 중국 국가주석, 동영상서 밝혀
13년 동안 중국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던 장쩌민(사진) 전 국가주석이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대학교수가 됐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장쩌민 전 주석이 2009년 4월30일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중국연합공정공사를 시찰하다가 약 4분간 자신이 1989년 공산당 총서기로 발탁된 사연과 재임 기간의 업적을 얘기하는 동영상이 최근 유쿠 등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확산되고 있다.
동영상에서 장 전 주석은 “6·4(천안문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가 없었다면 나는 계획대로 은퇴해 대학교수가 됐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89년 초 당시 63살로 상하이시 당서기를 맡고 있던 그는 모교인 상하이 자오퉁(교통)대학에서 교수직 초빙도 받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공산당 지도부 내에서 대응책을 둘러싼 격론이 벌어지고 있던 89년 5월31일,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은 그를 베이징으로 불러 공산당 총서기를 맡도록 했다. 장 전 서기는 “사람이란 운명을 알 수 없다”며 “운명은 자신의 노력에 달렸지만 역사의 과정도 고려해야 한다. 상하이 당서기를 맡고 있던 내가 베이징으로 뽑혀갈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총서기직 제의를 받고 처음에 자신은 덩샤오핑에게 “더 적절한 인재를 뽑으시지요”라고 말하고 다른 이에게 양보하려 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아울러 자신의 3대 업적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 확립, 덩샤오핑 이론 당장(헌법에 해당) 삽입, 3개 대표론(중국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문화·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한다는 이론으로 자본가의 입당을 허용)을 꼽았다.
장 전 총서기는 퇴임 뒤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지난 7월 초 사망설이 나돌았으나 10월9일 신해혁명 100돌 기념행사에 모습을 드러내 건재를 과시했다. 몇년 전에 촬영된 동영상이 갑자기 공개된 것은 자신의 사후 평가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내년 중국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자신이 지원하는 상하이방과 태자당에 힘을 실어주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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