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화제]
BBC, ‘중국 부유층의 기숙유치원 보내기 논란’ 보도
“독립성 키워야” vs “어릴 땐 부모와 함께 있어야”
BBC, ‘중국 부유층의 기숙유치원 보내기 논란’ 보도
“독립성 키워야” vs “어릴 땐 부모와 함께 있어야”
“엄마, 아빠 안녕~”
매주 월요일 오전 중국 상하이의 부유층 자녀 켈리 장(4)과 부모의 이별 장면이다. 켈리는 울거나 떼쓰지 않는다. 심지어 부모를 보려고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다. 부모가 작별 인사로 손을 흔들 때, 켈리는 이미 친구와 선생님과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월요일 오전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켈리의 집은 유치원이다. 가족은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다. 켈리는 ‘기숙 유치원’에 다닌다기보다는, 산다. 켈리는 주말에만 집에 다녀간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중국 부유층 부모들이 세살도 안 된 자녀들을 기숙유치원에 보낸다고 최근 보도했다. 상하이와 베이징 등 중국의 주요 대도시에는 이런 형태의 기숙유치원이 많다. 공식적인 숫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수천명의 유아들이 기숙 유치원에 다닌다는 추산만 있다. 중국에서도 가족들의 유대관계는 한국만큼이나 중요하다. 중국의 전통, 가족 문화로 설명되지 않는 기숙유치원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하이 기숙유치원 캉차오의 행정담당자인 쉬징은 몇가지 이유를 언급했다. 그는 “일부 부모들은 기숙유치원이 자녀들에게 독립심을 키워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조부모들이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자녀 정책 때문에 아이 하나당 친가, 외가를 합쳐 조부모가 4명에 아이가 1명인 경우도 많다. 부모들은 조부모들의 과보호로 자녀를 망칠까 우려하고, 이 때문에 어린 자녀를 기숙유치원에 보낸다는 설명이다.
자녀의 성공이 곧 가족의 자긍심이 되는 유교적 문화도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정신과 전문의인 한메이링은 “대다수 중국 가족들은 자녀가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다만 자녀의 성공에 너무 높은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기숙유치원 교육은 일부 부모들에게 선행학습 방편으로 여겨진다. 부모들은 기숙유치원을 거쳐 기숙학교로 진학하면, 좋은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높아지리라 기대한다.
켈리 장의 아버지 제이미는 투자 컨설턴트다. 어머니는 전업주부다. 부유한 엘리트 부모는, 한달에 6000위안(약 100만원)이나 하는 딸의 유치원비를 부담할 수 있다. 그는 “우리는 엄청나게 조사를 많이 했고, 기숙유치원이 외향적인 아이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기숙유치원은 우리 딸이 더 독립적이고, 더 나은 사회생활 기술을 익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켈리는 매우 씩씩한 아기였고, 자신만의 공간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딸의 도전을 위해 기숙유치원에 보냈다. 나중에 켈리에게 유치원에 남아 있고 싶은지 물었는데, 딸이 좋다고 말했다”며 흐뭇해했다.
그러나 딸이 그립지 않으냐는 질문에, 아빠의 눈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는 “처음엔 딸을 정말 그리워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세계가 점점 글로벌화되고 있으며 (기숙유치원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딸이 우리를 떠날 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우리는 딸이 더 독립적으로 커서 사회에서 살아남게 하려고 좀 더 일찍 떠나도록 한 것뿐이다.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에는 딸을 정말 소중히 여긴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기숙유치원은 ‘국공 내전’이 끝난 1949년 ‘내전 고아’들을 돌보려고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사실상 고아원이었던 셈이다. 갑자기 너무 바빠져 아이들을 돌볼 수 없었던 일부 공산당 지도자들도 아이를 기숙유치원에 넣었다. 하지만 요즘엔 아이들을 등원시키는 월요일 오전이 되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아우디와 벤츠 등 고급 외제차들이 기숙 유치원 앞에 줄지어 멈춰선다. 현재 기숙유치원에 오는 아이들이 ‘완전히 다른 부류’임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한메이링은 기숙유치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어려서 기숙유치원에 다녔던 수많은 성인과 청소년들이 트라우마 탓에 자신에게 치료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기숙유치원에 다녔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버려지고 하찮은 존재로 느낀다. 그들은 삶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부모들의 마음에서만 아이의 독립성이 자란다.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중국의 패션모델 왕단웨이도 세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기숙유치원에 갔다. 그는 “결국은 긍정적으로 수용하기로 했지만, 결코 그 경험을 좋아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숙학교로 보내졌을 때, 나는 엄청난 소외감을 느꼈고,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외롭게 보냈다. 늘 조용했고 새로운 사람과 사귀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부모와 떨어져서 사는 데 적응하는 것은 모든 아이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재미있는 활동으로 바쁘다. 그러다가도 잠자는 시간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사를 쓴 <비비시> 기자가 취침시간에 상하이 캉차오 유치원을 방문했을 때, 세살배기 유치원생들이 잠자는 방은 울음바다였다. 그는 “아이들이 부모를 찾으며 울고, 교사들은 그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애쓰는 매우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고 전했다. 이 유치원의 관리자인 황잉은 “오늘 학기를 시작하는 첫날이라 그렇다. 두달 뒤면 취침시간에 아무도 울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가족 사진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필요할 때 사진을 보면서 얘기할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있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기숙유치원의 폐해를 자각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쉬징은 “우리는 부모들에게, 만일 아이와 함께 있을 능력과 시간이 된다면 낮에만 보내는 어린이집이 더욱 좋은 선택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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