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춘추전국시대, 위(魏)나라에서 초(楚)나라로 가려던 사람이 있었다. 초나라는 위나라의 남쪽에 있었건만 그는 마차를 북쪽으로 몰았다.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고 하자 그는 자기는 돈이 많고 좋은 마차에 준마, 그리고 훌륭한 마부도 있기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마차는 계속 북쪽으로 달렸다. 끌채(수레채)는 남쪽을 향했는데 수레바퀴는 북쪽으로 향한 것이다. 남원북철(南轅北轍)이라는 고사의 유래다.
연초부터 남북한의 끌채는 모두 통일과 남북화해로 방향을 정하는 듯싶었다. 그런데 정작 수레바퀴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뒤 더욱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형국이다. 남북관계는 다시 살벌한 분위기로 돌아섰다. 당장 북한은 ‘4차 핵실험’까지 들고나온다. 맞대응으로 한-미-일의 릴레이 공조가 펼쳐진다. 남북관계는 또다시 얼어붙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줄곧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북한이 ‘악마화’돼서일까. 한국에서는 이제 ‘남북화해’가 금기어가 되어가는 분위기 같다. 이젠 북한이 변하지 않으려야 변하지 않을 수 없는 대내외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아닐까. 어찌됐든 북한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흡수통일 선언’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2월 말부터 중국의 중앙텔레비전(CCTV)에서는 한-미 군사훈련 장면이 끊임없이 방영되고 있다. 한-미 군사훈련은 북한 붕괴 때 북한 핵시설과 평양을 점령하는 상륙작전으로 비쳤다. 이를 보면서 미국이 단순히 북한의 공격을 방어하려 훈련을 벌인다고 생각하는 중국인은 드물었을 것이다. 북한이 반발하고 ‘도발’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많아진 것 같다. 한-미 군사훈련이 긴장의 원인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가 한-미 군사훈련과 북한 핵실험을 모두 반대한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한-미 군사훈련은 냉전이 종식된 뒤부터 줄곧 남북관계에 긴장을 가져왔다. 1990년대 초에는 중단됐던 팀스피릿 훈련이 재개되면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불러와 한반도를 요동치게 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미는 이 훈련을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하고 북한은 침공훈련이라 한다. 북한이 이상한 것일까? 한-미 군사훈련은 했다 하면 세계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훈련이다. 그것도 릴레이처럼 장장 두달씩도 이어진다. 북한이 자극을 받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이런 분위기에서 통일이 강조된다. 그러니 북한은 “흡수통일”, “체제통일”이라고 비난한다. 북한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자의든 타의든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은 한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임이 틀림없다. 북한에 대한 기본 판단은 이명박 정부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여기엔 북한 정권이 오래 못 간다는 전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일각에서는 ‘신뢰 프로세스’도, 드레스덴 선언도 애초 실현을 바란 게 아닐 수도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북관계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한국은 독일 통일을 벤치마킹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려 한다. ‘도둑’처럼 온다던 통일을 소리치며 불러오려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통일이 북한이라는 배를 침몰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것은 ‘대박’에 앞서 엄청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세월호 사건처럼 한국의 위기관리 능력이 먼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한국은 과연 세월호보다 ‘수천배 되는 배’의 침몰에 대처할 수 있는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것일까? 잘못하면 한국이라는 선체도 침몰할지 모른다. 결국 그런 통일은 한국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성공적 통일은 남북한에 대박을 안겨줄 수 있는 소중한 축복임에 틀림없다. 소중한 것만큼 조심스레 다루어야 한다. ‘남원북철’의 고사처럼 돈이 많고 좋은 마차에 준마, 그리고 훌륭한 마부가 있다고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통일은 멀어져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일의 끌채와 수레바퀴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력은 누가 뭐라 해도 남북의 대등한 교류와 협력에 있을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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