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국

[세계의 창] 동아시아의 혼돈과 질서 / 진징이

등록 2014-06-22 18:25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불과 몇해 전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명제로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이야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태평양은 중·미를 용납할 만큼 넓다”면서 중-미 ‘신형대국관계’를 전망했다. 그러던 동아시아가 중-미 갈등을 핵으로 다시 혼돈을 겪는 듯하다. 지정학과 지경학이 혼재해서일까, 한편으로는 지역 경제 블록화를 지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불꽃 튀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왜일까?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작금의 아시아가 20세기 초 유럽과 비슷하다고 했다. 당시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영국과 독일 등의 갈등으로 혼란스럽던 유럽은 결국 동맹국과 협약국이라는 양대 군사집단으로 나뉘어 1차 세계대전을 치렀다. 그것도 모자라 두번째 세계대전까지 겪고서야 새로운 질서를 확립했다.

작금의 동아시아 역시 나라들 간의 갈등이 점철되면서 혼란스럽다. 키신저는 아시아에 전쟁의 유령이 배회한다고까지 했다. 근대사 이후 여러차례 전쟁을 거쳐 질서 전환을 이루었던 동아시아다. 이제 다시 전쟁을 겪어야 새로운 질서를 잉태시킬 수 있는 것인가?

일각에서는 1차 세계대전 전의 영-독 관계를 현재의 중-미 관계에 비유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를 중-일 관계에 견주기도 한다. 신흥 대국인 중국이 기존 대국인 일본에 도전한다고 말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갈등의 핵심은 미-중 관계다. 새로운 질서 확립을 위한 미-중의 힘겨루기가 바로 오늘의 동아시아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경제적인 상호 의존 관계가 증대하고 있음에도 정치, 군사적인 대립이 커지는 혼돈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지역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시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혼돈’이란 사물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예측불가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질서란 각자의 자리매김이 이뤄진 것을 뜻한다. 해나 달이 지금의 위치에서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오늘의 지구도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조물주는 바로 이 자리매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사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의식을 가진 개개인으로부터 나라에 이르기까지 각자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있어야 긍정적인 질서가 자리잡힌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역사에는 늘 약육강식이라는 힘의 논리가 작용했다. 힘으로 차지한 패권과 강권이 질서를 좌우해왔다. 그랬기에 ‘혼돈’은 많은 경우에 전쟁으로 정돈되었고 질서는 힘의 강약에 따른 자리매김으로 이루어져 왔다. 따지고 보면 동아시아가 보여주는 오늘의 혼돈도 이런 역사의 관성에 따른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근원은 세계 유일의 초대강국인 미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앞으로 100년 동안 계속 세계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이 스스로 정한 자신의 자리매김이라 할 수 있다. 향후 100년의 패권선언이라고 해도 되겠다. 미국의 마이클 린다가 말했듯이 미국은 일극 세계에서 냉전 시기 위성국인 일본이나 서독처럼 중국이나 다른 대국들이 미국의 종속적인 지위에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세계 도처에서 ‘혼돈’과 ‘분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라크도 그렇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렇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려 혼돈을 만든 다음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세우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혼돈에 빠진 나라나 지역에는 모두 미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면 미국은 제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일까? 21세기의 세계를 다시 지배하려는 미국의 초기 조건은 20세기 때와 다르다. 다극화가 추세이고 글로벌화, 경제 블록화가 흐름이다. 베스트팔렌 체제의 기반이었던 주권 의식은 전례없이 고조됐다. 중국과 같은 신흥 대국들은 패권다툼이 아닌 새로운 ‘대국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미국은 약발이 떨어진 조지 케넌의 봉쇄, 억제정책으로 패권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동아시아 혼돈이 미국이 패권을 쥐는 질서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스스로 도와 ‘자주적’으로 이루는 새 질서를 기대해 보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