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 4월이면 남북관계는 예외 없이 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북한의 반발에도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철칙처럼 지켜져왔다. 춘계 훈련이 끝이 아니다. 추계 훈련이 기다린다. 남북관계 개선에 주어진 시공간은 바로 이 긴장과 긴장 사이의 틈새밖에 없는 듯하다. 그래서 4월 말 한-미 군사훈련이 끝날 즈음이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이벤트식이다. 한-미 군사훈련 기간이면 북한은 예외 없이 전쟁 분위기를 연출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다음 훈련 전까지 화해 분위기가 연출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올해로 분단 70년. 남북관계는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온 것 같다. 아니 원점보다 더 퇴보했다. 동서냉전이 막을 내릴 때 남과 북은 비록 열전과 냉전을 치렀지만 서로 만남을 열망했고 함께 ‘우리의 소원’을 열창했다. 수천수만의 한국인들이 북한을 넘나들며 감동을 연출했다. 그렇지만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랄까. 이젠 감동도 열망도 사라진 것 같다. 남한 사회에 비치는 지금의 북한은 완연히 악마이고 지옥이라 하겠다. 자의든 타의든 대북 혐오감은 날로 짙어가는 것 같다. 북한도 한몫하는 것 같다. 주한 미국대사에게 행한 테러를 ‘정의의 칼 세례’라고 했는데, 남한의 혐오감을 부채질하는 격이다. 남한 정부에 대한 북한의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원색적 비난 일색이라고 할 만큼 적대감이 날로 고조되는 느낌이다.
지난 70년 세상은 천지개벽하였건만 남북 분단현실은 참담하다. 수많은 인사들이 공들여 쌓아왔던 탑도 부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왜일까.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가 말했듯이 “남한의 극우와 북한의 극좌가 상생공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은 아닐까? 분단 구도를 상생공존의 필수조건으로 하면 남북관계는 물레방아처럼 원점을 도는 패턴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스템 이론대로라면 분단체제는 남과 북 두 요소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다. 70년 자란 뿌리들이 얽히고설킨 구도다. 마오쩌둥이 말한 ‘모순의 통일체’라 할까, 대결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어느 한 뿌리를 뽑으려면 다른 뿌리들이 달려들어 끌어당기는 형국이다. 그 다른 뿌리를 자르는 결단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여전히 북한이 “진정성 있는 대화와 변화의 길로 들어설 것”을 촉구했다. 북한이 더 이상 남북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북한의 반응은 거칠다. 대화와 관계 개선의 기회는 이미 지나갔고, 힘 대결에 의한 최후의 결산만이 남았다고 한다. 그러니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끝나는 5, 6월에도 대화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일 수 있다. 이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통일준비도 김칫국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남과 북에 쌓이고 쌓이는 극도의 불신이라 하겠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신뢰가 없으면 관계 개선의 공간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 프로세스를 내놓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신뢰는 서로가 주고받는 믿음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남과 북은 주지는 않고 받으려고만 하는 형국이 된 것 같다. 그러니 70년 동안 네 탓 내 탓을 계속 반복하는 게 아닐까. 신뢰는 바닥을 치는데 통일 열기가 상승하니 한쪽에서는 흡수통일, 체제통일 위협이라고 보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누가 봐도 남한이 우위다. 우위면 우위의 자신감으로 신뢰와 아량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5·24 조치 해제와 같은 과감한 정치적 결단을 주문하는 이유다. 사실 5·24 조치 해제는 이제 ‘수도거성’(水到渠成, 물이 흐르면 도랑이 생기게 마련이란 뜻)의 흐름을 타고 있다 하겠다. 물타기로 해제되는 것과 정치적 결단으로 해제하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다. 정치적 결단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신념의 표출이다. 그만큼 주는 믿음도 강하다.
분단 70년, 지루한 ‘네 탓 내 탓 공방’의 패턴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과감한 정치적 결단력으로 남북교류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어떨까. 물은 아래로 흐르고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그 흐름의 교류가 가장 확실한 통일준비라 하겠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