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최 장소 논란으로 합의를 보지 못했던 8·15 남북공동행사가 다시 논의되고 있다. 광복 70돌에도 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되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갈수록 첩첩산중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의 노력이 각별히 눈에 띈다. 하지만 꼬여 있는 남북관계가 풀릴 실마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의 보다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강조한다. 미국이 손을 놓고 있으니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중국이 특유의 제재 수단으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위한 한-중 협력이 거론되고 있다. 남북한의 직접 협력이 어려우니 중국을 통한 ‘곡선’(曲線)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다른 한쪽에서는 통일이 거창하게 논의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 집중토론회에 참석해 “이제는 통일을 열어가기 위한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변화를 통해 경제 발전과 평화의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마련해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제재를 강조하면 경제협력이 어렵고, 경제협력을 강조하면 북핵 문제 해결에 차질이 생길 수 있고, 통일을 강조하면 흡수통일로 오해받기 쉽다. 한국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 핵심은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인데 북한은 그것을 체제 전복과 흡수통일의 야망이라고 비난한다.
한국은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한다. 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국은 여전히 북·미라고 인정한다. 미국이 북핵 문제에서 손을 놓았다고 해서 중국이 미국을 대신할 수는 없다. 북한과 함께 북핵을 부풀려 온 게 미국이다. 이제 와서 자기는 뒤로 빠지고 중국이 나서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중국을 거치는 남북협력 역시 신통치 않다. 중-북 협력도 답보상태이기 때문이다. “대국을 쥐락펴락한다”고 생각해서일까. 북한의 중국 무시는 극에 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오늘의 중-북 관계는 한국 일각에서 바라던 것일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자기가 중-북 관계에 쐐기를 박았다고 자화자찬했지만 그렇다고 중-북 관계 악화로 한국이 득을 본 것도 없다.
박근혜 정부는 애초 신뢰프로세스로 남북의 신뢰를 쌓아가고 동북아평화협력구상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이젠 신뢰프로세스도 서울프로세스도 없던 일로 된 것 같다. 대신 통일프로세스와 유라시아협력프로세스가 대세를 이루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정작 통일과 유라시아 협력의 한쪽을 이룰 북한은 보이지 않는다. ‘일수독박’(一手獨拍·한손으로 박수치다)이라고 하면 과분한 것일까. 어쨌든 들려오는 것은 공허한 불협화음인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통일의 ‘통’(統)자는 원래 뜻이 비단의 실마리이다. 누에고치가 뜨거운 물에서 실마리를 뽑아내야 비단이 된다는 뜻에서 파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딜레마를 풀고 통일을 이루어나갈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국은 북핵 문제, 남북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은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은 벌도 받았다.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됐고 악마화됐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라는 말도 이젠 요설이 된 듯싶다. ‘북한 악마화’를 공유한다고 할까. 한국 매체에서 파생되는 북한 소식은 영락없이 같은 시간대에 중국 인터넷을 떠돌아다닌다. 북한에 대한 혐오증도 함께 깊어가는 것 같다. 자승자박이라고 하지만 처절하다. 북한이 ‘악마’가 되면 북한은 더는 한국과 평등한 관계로 협력할 대상이 아닐 것이다. 사라져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러니 북한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남북 관계의 근원은 제로섬 게임에 있다. 남북의 모든 갈등은 바로 이 제로섬 게임에서 파생된 것이다. 결국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도 여기에서 풀어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무엇보다 자기방식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제로섬 사고를 버려야 할 것 같다. 신뢰프로세스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정녕 북한의 변화를 원한다면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전략적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할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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