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들이 11일 <핑궈일보>를 사기 위해 도심의 노점상 앞에 줄을 서 있다. 홍콩 경찰이 전날 아침 시민사회 원로이자 <핑궈일보> 창간 사주인 지미 라이와 임원진 등 6명을 동시다발로 체포한 데 항의하기 위한 것이다. 이날 <핑궈일보> 1면에는 ‘우리는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가 실렸다. 홍콩/AP 연합뉴스
11일 새벽 1시30분께 홍콩 카오룽반도 몽콕 지역의 어두운 거리에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기다랗게 줄을 섰다. 30분 남짓 뒤 배달 차량이 도착해 가판대에 신문 뭉치를 던졌다. 이날치 <핑궈일보> 1면 머리기사에는 ‘우리는 싸움을 계속할 것’이란 제목이 달렸다.
“어제가 <핑궈일보> 최악의 날은 아닐 것이다.” 신문은 이날치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이어 “앞으로도 탄압과 체포가 이어지면서 우리를 두려움으로 빨려들게 할 수도 있다”며 “그럼에도 수많은 독자와 필자의 기도와 응원 속에 우리는 싸움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몽콕 가판대에서 방금 배달된 신문 한 부를 손에 든 시민 킴야우(45)는 <홍콩방송>(RTHK)과 한 인터뷰에서 “어제 경찰은 언론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았다. 의식이 있는 홍콩 시민이라면 누구나 <핑궈일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한껏 움츠렸던 홍콩 시민사회가 다시 ‘싸움’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전날 아침 홍콩 경찰이 <핑궈일보> 사주인 지미 라이를 홍콩보안법 위반(외세결탁) 혐의로 체포한 직후부터 홍콩 시민들은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미 라이의 체포와 대대적 압수수색으로 <핑궈일보>의 생존이 위태롭다는 전망이 나오자,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모회사인 넥스트디지털의 주식을 매입해 연대하자고 촉구하는 글이 쏟아졌다. 그 결과, 오전 한때 폭락했던 넥스트디지털의 주가는 오후 들어 344%나 폭등해, 전장 대비 183% 오른 상태로 장을 마감했다. 넥스트디지털의 주가는 11일에도 장중 한때 500% 이상 치솟는 등 폭등세를 이어갔다.
<핑궈일보> 쪽은 10일 밤부터 11일 새벽까지 신문이 제작되는 전 과정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누리꾼 수천명이 밤새 이를 지켜봤다. 첫 인쇄판이 몽콕에 도착했을 때 가판대 주변에 시민 5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신문 쪽은 “통상 7만부가량을 인쇄했지만, 11일치는 35만부를 찍었다”고 밝혔다.
홍콩섬 중심가 애드미럴티 지역에서 30여년째 신문가판대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남성은 <홍콩방송>에 “평소에는 <핑궈일보>를 수십부 정도만 받았는데, 오늘 새벽엔 1천부를 받아 다 팔았다. 시민들이 다른 신문엔 손도 대지 않더라”고 말했다. 근처에 직장이 있다는 한 남성도 신문을 구매한 뒤 “마지막으로 ‘종이신문’을 산 게 언젠지도 모르겠다. 지지의 뜻을 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콩 시민들의 ‘지지 열기’는 신문 쪽의 예상치를 훌쩍 벗어났다. <홍콩 프리프레스> 등은 “신문이 가판대에 도착할 때마다 10부, 20부씩 사들고 가는 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핑궈일보> 쪽은 이날 오전 8시께 누리집을 통해 “추가 인쇄한 부수까지 일찌감치 매진돼 20만부를 더 찍었다”고 밝혔다. 홍콩보안법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이날 넥스트디지털 쪽은 따로 성명을 내어 공안당국의 행태를 강력 비판하며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신문 쪽은 성명에서 “홍콩의 언론의 자유가 이제 벼랑 끝에 섰지만,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다짐을 잊지 않고 있다”며 “불법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야만적인 행태에 맞서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탄압 속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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