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6일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따. 맨체스터/UPI 연합뉴스
영국에서 경찰관이 여성을 끔찍하게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성’을 혐오범죄의 범주에 넣는 것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여성혐오가 동기로 작용한 범죄를 혐오범죄로 규정하자는 주장은 지난 3월 경찰관이 런던에서 ‘방역 지침을 위반했다’고 속여 귀갓길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 이후 본격화됐다. 이 경찰관은 지난달 말 가석방 가능성이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런던에서 친구를 만나러 가던 여성 교사가 살해된 것도 이런 여론에 힘을 실었다. 영국 경찰은 2019년 3월 이후 지난해까지 살해당한 여성이 2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여성계와 정치권에서는 여성혐오적 ‘문화’와 경찰의 소극적 대응 속에 많은 여성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본다.
11일 <가디언>을 보면, 영국 여성계와 정치권 등에서는 성을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장애, 성전환자 대상 등 기존의 혐오범죄 범주에 넣자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혐오나 적대감이 범죄 동기로 작용했다고 판단되면 다른 혐오범죄처럼 처벌을 강화하자는 뜻이다. 강력범뿐 아니라 협박, 가정폭력, 스토킹 등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영국 본토의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시행되는 법률은 혐오범죄는 형량을 가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에 대한 압박도 강화되고 있지만 그는 미온적이다. 존슨 총리는 여성 경찰관 충원, 여성 대상 혐오범죄에 대한 데이터 수집 시범사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경찰이 할 일을 단순히 넓히기만 한다면 문제가 커질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 대상 범죄가 혐오범죄인지를 조사하게 한다면 경찰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존슨 총리는 범죄를 처벌할 법률은 많다며, 범죄를 적발하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했다. 도미닉 라브 법무장관도 <비비시> 인터뷰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든 여성이 남성에게 가하든 모욕이나 미소지니(misogyny·여성혐오)는 아주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혐오범죄 대상 확대에 반대했다. 라브 장관의 발언은 ‘여성혐오’의 정의도 모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집권당인 보수당 여성 의원들도 존슨 총리 등의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성을 혐오범죄 범주에 넣는 법안 마련을 주도한 상원의원 헬렌 뉴러브는 존슨 총리의 입장에 대해 “실망스럽다”며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완전히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당 섀도캐비닛의 법무장관 데이비드 래미는 라브 장관의 인터뷰에 대해 “보수당이 여성들과 소녀들에 대한 범죄를 다루는 데 엉망인 게 놀랍지도 않다”고 말했다. 성을 혐오범죄 범주에 넣자는 운동을 전개하는 이들은 사흘에 1명꼴로 여성이 살해당하는 상황에서 여성 대상 범죄의 처벌률이 낮은 것은 경찰이 효과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혐오범죄의 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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