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로마 가톨릭 교황과 키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가 2016년 2월 12일 쿠바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서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이 러시아 정교회를 겨냥해 “푸틴의 복사 노릇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복사는 사제의 미사 집전을 돕는 아이를 가리킨다. 러시아 정교회는 “양쪽의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왜곡”이라고 반발했다.
프란치스코(85) 로마 가톨릭 교황은 최근 이탈리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키릴(75)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가 지난달 영상통화에서 미리 준비한 자료를 보며 전쟁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목록을 읽었다면서 “이 말을 듣고 ‘나는 이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또 자신이 키릴 총대주교에게 “‘형제여, 우리는 나라의 사제가 아니고 정치의 언어를 쓰면 안 되고 예수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우리는 같은 신의 신성한 사람들의 사제이고 이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고 전쟁을 끝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발 더 나아가 “총대주교가 스스로 푸틴의 복사가 되어선 안 된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발끈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4일(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확하지 않은 논조로 양쪽의 대화 내용을 전달했다. 이런 얘기는 로마 가톨릭과 러시아 정교회 사이의 건설적인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1억명의 신도를 자랑하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2009년 선출된 최고위 사제이다. 정교회는 11세기 로마 가톨릭과 갈라진 뒤 동유럽권에서 주로 번성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엔 두 나라 정교회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 대통령 지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달엔 대성당 앞에서 러시아군 장병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면서 “조국을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 러시아인만 우리나라를 방어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또 우크라이나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가리켜 “신성한 러시아의 사람들이며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하고, 군복무에 대해선 “이웃에 대한 복음주의적 사랑의 명백한 증거”라고 상찬했다. 유럽연합(EU)은 키릴 총대주교를 추가 제재대상에 포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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