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장갑차량이 4일 승리의 날 행사 연습을 위해 모스크바 붉은광장으로 가고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시가지에서 건물 잔해를 치우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곳에서 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일인 9일 ‘승리의 날’ 행사를 치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는 미국 등이 우크라이나로 쏟아 붓는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서부 지역의 철도 등 기간시설을 폭격했고, 주전장인 동부 돈바스에선 슬로비얀스크 등을 향한 진격을 이어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4일(현지시각) 마리우폴을 점령한 러시아군이 폐허가 된 시가지에서 군사 행진 등을 하려고 준비하는 모습이 관측되고 있다고 밝혔다. 페트로 안드류슈첸코 마리우폴 시장 보좌역은 “점령군들이 ‘드라마 극장’을 포함한 시내 중심지에서 건물 잔해들을 해체하고 철거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군사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군사정보 당국은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이른바 ‘승리의 날’인 9일을 기념하는 행사장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말했다. 승리의 날은 제2차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이 항복한 날로 러시아는 매년 이 날을 기념해 대규모 행사를 치른다.
이날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마리우폴의 극장 밖에 버려진 차량과 부서진 건물 잔해 속에서 이를 치우려는 요원들과 불도저가 콘크리트 더미 사이를 오가는 모습도 보인다. 극장은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벽이 불타고, 창문이 깨지고, 천장이 무너진 상태다. 안드류슈첸코 보좌역은 “치우는 작업에 주민들도 동원됐다. 이들은 노역에 참여하고 먹을 것을 받았다”고 말했다.
마리우폴에서 마지막 남은 우크라이나군의 거점인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향한 러시아군의 공세도 이어졌다. 우크라이나군 당국자들은 이날도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교전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 지하벙커에는 아직도 민간인 200여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방부는 조만간 이들 민간인의 탈출을 허용할 인도주의 회랑을 개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이우폴에는 러시아군 병력이 2000명 정도 남았고 나머지 병력은 돈바스 지역의 북쪽을 점령하기 위한 진격에 나섰다고 미군 정보 당국이 밝혔다.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선 철도와 전기시설 등 사회기반 시설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습이 이어졌다. 이는 서방의 군수지원을 포함한 군사 장비가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으려는 러시아의 시도라고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4일 밤에도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러시아군의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돈바스 지역에선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진행 중이다. 러시아군은 슬로뱐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에 공세를 집중하는 모습이다. 얼마 전 이지움을 점령한 러시아군이 돈바스를 방어하는 우크라이나군을 포위·고립시키려면 이 지역을 돌파해야 한다. 러시아군은 이 지역을 거쳐 남동쪽으로 더 내려가, 마리우폴을 점령한 뒤 북진하는 병력과 만나 포위망을 완성한다는 전략이다.
미군 정보당국은 러시아군의 이런 포위 작전이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리우폴에서 북진하는 병력은 벨리카 노보실카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막혀 진격이 멈췄고, 이지움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오는 병력은 이제 슬로뱐스크 공략을 준비하는 등 진군 속도가 더디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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