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14일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영국 경제에 대혼돈을 부른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가 재무장관을 해임하고 감세안을 되돌리고 있으나, 역풍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집권 보수당 내에서는 트러스를 조기 축출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트러스 총리는 14일 대규모 감세안을 주도했던 쿼지 콰텡 재무장관에게 사임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경질했다. 후임으로는 제러미 헌트 전 외교장관을 지명했다. 트러스 총리는 같은 날 연 기자회견에서 대규모 감세안의 핵심 중 하나였던 법인세 증세 철회 계획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트러스 정부는 내년 4월까지 법인세율을 현행 19%에서 25%로 올리겠다는 보리스 존슨 전임 총리 시절 결정을 뒤집겠다고 해왔는데 포기한 것이다. 트러스 정부는 지난달 23일 최고 소득세율 인하와 법인세 인상 철회를 포함한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아 시장에 혼란을 불렀다. 재원 마련이 불확실한 감세안에 영국 파운드화는 지난달 26일 한때 달러와 1 대 1에 가까운 사상 최저 가치 수준으로 폭락했다. 이에 트러스 정부는 지난 3일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계획을 철회해 시장 불안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시장 혼란이 여전하자 취임 40일도 되지 않아 핵심 정책과 핵심 각료를 포기했다. 14일 기자회견에서는 트러스 총리에게 사임할 의사를 묻는 질문이 속출했다.
보수당 내에서는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트러스를 신속히 퇴진시키려는 ‘구출 작전’을 논의하는 모임이 17일부터 한주 내내 열릴 것이라고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이 15일 보도했다. 보수당 대표 경선 때 트러스와 경쟁했던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 지지자들은 전직 장관과 중진 의원 15~20명 정도를 당내 고위급 인사들의 모임인 ‘어른들의 저녁’에 초대해 트러스 퇴진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들은 보수당 대표 경선에 참여했던 또다른 의원인 페니 모돈트와 수낵이 손을 잡는 방안 등 구체안도 세워놓았다.
트러스 지지자들은 트러스 총리가 퇴진하면 조기총선을 치러야 할 것이고 보수당은 와해될 것이라며 방어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장관은 <가디언>에 “우리가 지도자를 다시 바꾸면 우리 당은 끝장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7월7일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혔고 두달 뒤인 9월6일 트러스 총리가 취임했다. 불과 석달여 만에 총리를 두번이나 바꾸는 일은 보수당에 치명적이라는 경고다.
트러스 쪽에서는 당대표 신임투표를 하자는 극약 처방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신임투표 강행은 트러스가 지도력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만, 이 경우 보수당의 분열과 대결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새로 임명된 헌터 재무장관이 감세안 등 트러스 정부 경제정책을 사실상 부정한 점도 트러스 총리 회의론이 커지는 이유다. 헌트 장관은 15일 낸 성명에서 재원 없는 감세안을 담은 이른바 ‘미니 예산’으로 트러스 정부는 “너무 멀리, 너무 빨리” 갔다고 했다. 그는 경제적인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가까운 장래에 세금을 올려야만 하고, 지출도 삭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국민에게 정직해야 한다”고도 꼬집었다. 트러스 총리는 감세안을 주장해 보수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하고 총리에 올랐다. 그런데 이렇게 감세안이 속속 부정되고 있는 상황이라 트러스의 국정 지도력과 신뢰도 붕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