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자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12살 프랑스 소녀가 다녔던 중학교 밖에 17일(현지시각) 프랑스 시민들이 추도의 꽃다발을 올려놓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불법 체류자가 12살 소녀를 숨지게 한 끔찍한 사건에 프랑스가 발칵 뒤집혔다. 극우 국민연합 등 반이민을 내세운 우파 정당들은 정부의 느슨한 이민 정책을 비난하는 정치 공세를 펼치고 있다.
프랑스 경찰은 18일 롤라라는 이름의 12살 소녀를 숨지게 한 혐의로 알제리 출신의 불법 체류자인 여성(24)을 체포해 수사 중이라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 소녀는 지난 14일 학교를 마치고 돌아는 길에 사라졌다가 그날 밤 자신이 살던 파리 북동부 19구 아파트 마당의 플라스틱 통 안에서 발견됐다. 주검엔 고문과 성폭행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부검 결과 “경추 압박 흔적”이 발견됐다. 누군가 소녀를 목 졸라 숨지게 한 것이다. 그밖에 얼굴·등·목에도 상처가 있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관리인인 소녀의 아버지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조사해 딸이 용의자와 아파트 로비에 같이 있었던 것을 찾아냈다. 화면엔 용의자가 소녀의 주검이 발견된 트렁크 등을 들고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모습도 기록돼 있었다. 그는 17일 살인·성폭행·고문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잔인하게 숨진 소녀의 사연이 전해지며 프랑스 전역에서 추도의 물결이 일어났다. 시민들은 주검이 발견된 곳과 소녀가 다니던 학교에 애도의 꽃을 바쳤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17일 엘리제궁에서 롤라의 부모를 만나 위로하고 사건 해결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민 제한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는 정부를 향해 총공세를 펼쳤다. 그는 “야만적인 행위를 한 용의자는 우리 나라에 체류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이런 통제 안 되고, 은밀한 이민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크롱 정부의 느슨한 이민 정책이 이번 사건을 낳았다고 비난한 것이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르펜 대표에게 “예의를 보여달라. 경찰과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게 하자”며 희생자 부모의 고통을 존중해달라고 호소했다.
불법 체류자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12살 프랑스 소녀가 다녔던 아파트 밖에서 18일(현지시각) 한 시민이 사진을 찍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국민연합 등은 용의자가 출국명령을 받은 불법체류자 신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6년 전 학생 비자로 프랑스에 입국했으나, 체류 기간이 만료됐다는 사실이 8월20일 발각됐다. ‘프랑스 영내 로부터 출국 의무’(OQTF) 신분을 부여받고, 한달 이내로 프랑스에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범죄경력이 없어 즉각 구금돼 강제 출국은 면했다.
하지만 용의자가 받은 이 명령은 준수율이 1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파 정당에선 알제리인들이 이 제도를 활용해 불법체류를 일삼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 극우 후보로 출마했던 에릭 제무르는 이번 사건을 “프랑스 학살”이라고 명명하며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온건 우파 정당인 공화당의 에릭 로제 의원도 제라르 다르마넹 법무장관에게 “당신이 그 사람을 추방하지 않아서 롤라가 생명을 잃었다”고 비난했다.
용의자가 소녀를 살해한 동기에 대해선 여러 추정이 이어지고 있다. 파리 검찰은 소녀의 발에 1과 0 숫자가 쓰여있다고 밝혔다. 이 숫자가 사교 의식을 상징한다는 지적도 있다. 용의자와 소녀의 어머니 사이의 다툼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용의자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 건물에 들어가는 통로를 내려 했는데, 롤라의 어머니가 거부해 다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용의자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이고, 정신검진이 예정돼 있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