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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무지개 축구화’ 독일팀, 입 막고 ‘무언의 항의’ 이유는?

등록 2022-11-24 15:39수정 2022-11-24 22:06

FIFA ‘무지개 완장’ 금지에 표현의 자유 핍박 항의
독일 장관, FIFA 회장 옆 ‘무지개 완장’ 차고 관람
23일(현지시각) 독일 축구 대표팀이 2022년 피파 월드컵 E조 일본과의 경기를 앞두고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이들은 ‘원 러브’ 완장 착용을 금지한 피파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경기 시작 전 이러한 퍼포먼스를 했다. UPI 연합뉴스
23일(현지시각) 독일 축구 대표팀이 2022년 피파 월드컵 E조 일본과의 경기를 앞두고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이들은 ‘원 러브’ 완장 착용을 금지한 피파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경기 시작 전 이러한 퍼포먼스를 했다. UPI 연합뉴스

23일 카타르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독일과 일본의 경기를 앞두고 독일 대표팀 모두가 입을 막았다. 이들 대표팀 선수들의 축구화에는 ‘무지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선수들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

이날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은 “독일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국제축구연맹(FIFA·피파)이 재갈을 물린 것을 암시하는 항의와 분노”를 표출했다고 보도했다. 피파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성소수자(LGBT)에 대한 차별은 물론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는 취지로 2020년 네덜란드 축구협회가 도입한 ‘원 러브’(One Love) 완장 착용을 금지했다. 카타르는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최대 7년 징역형에 처한다. 이날 독일 축구 대표팀의 퍼포먼스는 ‘피파가 우리 입을 막고 있다’, 곧 피파가 대표팀 선수들이 ‘차별 반대’ 메시지를 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된다.

애초 독일을 비롯해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스위스, 웨일스 등 7개 대표팀은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원 러브 완장을 차고 차별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했다. 하지만 피파가 대표팀 주장이 원 러브 완장을 착용하고 나오면 ‘옐로우 카드’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해, 이들 7개 나라들은 원 러브 완장 착용 계획을 접었다. 대신 독일 대표팀은 경기 전후 여러 방식으로 차별 반대 메시지를 내는 데에 동참했다. 선수들은 몸풀기 때 어깨에 무지개가 그려진 유니폼 입는가 하면, 일부 선수들은 이날 경기에 무지개가 그려진 축구화 신었다.

난시 패저 독일 내무장관(사회민주당)도 힘을 보탰다. 패저 장관은 이날 독일-일본 경기를 보기 위해 현장에 참석했는데 왼쪽 팔뚝에 원 러브 완장을 차고 나타났다. 완장 착용 금지한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 바로 옆에 앉아 경기를 봤다. 독일-일본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 축구협회는 성명을 내어 “완장 착용을 못 하게 하는 건 우리한테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독일 대표팀은 다양성과 상호 존중의 가치를 지지한다고 했다.

23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주점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독일 대 일본 경기를 보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있다. AP 연합뉴스
23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주점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독일 대 일본 경기를 보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있다. AP 연합뉴스

‘카잔 불명예’ 안되지만…예전만 못한 독일 축구 열기

독일에서는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벌어진 ‘카잔의 불명예’가 재현돼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 월드컵 우승 4관왕인 독일은 지난 2018년 러시아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과 경기에서 2대0으로 패해 80년 만에 조별리그 1라운드에서 탈락한 바 있다. 하지만 23일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독일 대표팀이 예상을 뒤엎고 일본팀에 2대1로 패배하자,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비판 목소리 때문에 가라앉았던 월드컵 열기는 더 식어버렸다. 한시 플릭 독일 대표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쁜 출발”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주요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SZ)은 같은 날 독일 뮌헨에 있는 유명 축구 펍에서 독일-일본 경기를 보는 시민들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펍(맥줏집)의 분위기는 다소 가라 앉았다”며 “축구에 대한 열기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결과가 나빠서만 그런 건 아니다”라고 했다. 축구에 열광하기로 유명한 독일이지만 각종 논란을 일으킨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중계로 유명한 주점들도 중계 여부를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매체가 전한 주점 풍경을 보면 거대한 스크린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크게 붐비지 않았다. 경기 시간이 독일 시간으로는 낮 2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인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독일 유니폼을 입고 있는 시민들이 많지 않고 이전과 달리 독일 깃발을 펄럭이고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전했다.

이날 경기 결과가 끝난 뒤 독일 주요 언론들의 관심은 대표팀이 패배한 것 자체보다 ‘원 러브’ 완장을 차지 못하고 입을 가리는 퍼포먼스를 한 상황에 초점이 우선 맞춰지기도 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24일(현지시각) 경기 결과를 평가하는 기사에서 “독일은 용기와 힘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대표팀이 원 러브 완장을 차지 않은 대신 입을 가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 받으려는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그건 절반의 진실이다. 선수들은 솔선수범하며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었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행위를 “무기력한 제스처”라고 하거나 선수들을 “말 잘 듣는 어린 아이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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