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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칸트의 도시’에서 맞붙은 러시아-폴란드 ‘이름 전쟁’

등록 2023-05-11 13:33수정 2023-05-11 13:44

러시아 병사들이 9일(현지시각) 칼리닌그라드에서 전승기념일 행진을 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러시아 병사들이 9일(현지시각) 칼리닌그라드에서 전승기념일 행진을 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관계가 크게 악화한 러시아와 폴란드가 이번에는 발트해 연안도시의 이름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고 영국의 <비비시>(BBC)가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논란의 대상은 러시아가 제2차세계대전 승전의 대가로 편입한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폴란드 정부의 ‘국외지명표준화 위원회’(CSGNORP)는 최근 이 도시를 ‘크롤레비에츠’로 고쳐 부를 것을 제안했다. 크롤레비에츠는 러시아에 편입되기 전 독일 영토였을 당시 독일어 이름인 ‘쾨니히스베르크’의 폴란드식 표현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거의 미친 것이나 다름없는 제안”, “적대적인 행위”라며 맹비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크렘린) 대변인은 “우리는 역사를 통해 폴란드가 때때로 러시아에 대한 증오심으로 정신이 나가곤 한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이 도시는 과거 몇백년 동안 프로이센과 독일의 영토로 쾨니히스베르크로 불려왔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나고 자라고 묻힌 도시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옛 소련의 영토로 편입됐으며, 옛 소련은 이 도시의 이름을 볼셰비키 혁명 지도자 중 한 명인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따 칼리닌그라드로 바꿨다. 1991년 옛 소련 해체 뒤에는 이 도시를 러시아가 물려받았으나, 폴란드와 라트비아에 막혀 러시아 본토와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 고립된 지역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의 발트해 항구도시로는 단 하나뿐인 부동항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실제 러시아의 발트해 함대도 이곳에 기항하고 있다.

칼리닌그라드. 구글맵 갈무리
칼리닌그라드. 구글맵 갈무리

폴란드의 국외지명표준화위원회는 9일 성명에서 개명 권고의 배경에 대해 칼리닌그라드란 이름이 폴란드에 “감정적이고 부정적인” 기억을 불러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도시 이름의 기원이 된 미하일 칼리닌은 1940년 카틴 숲에서 폴란드 전쟁포로 2만1천명의 처형 명령서에 서명한 옛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6명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이다.

애초 카틴 숲 학살사건이 알려지자 옛 소련은 이를 나치 독일의 소행이라고 떠넘겼다. 이 사건은 제2차세계대전 뒤 공산체제가 된 폴란드에서 아무도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러시아는 1990년이 되어서야 카틴 숲 학살의 책임을 인정했다.

국외지명표준화위원회는 또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논란 많은 “외부에서 부과된 이름”을 재평가하도록 만들었다며 “모든 나라가 그 나라 문화유산의 일부인 전통적인 이름을 자국 언어로 사용할 권리가 있으며, 누구도 그 나라 언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름을 쓰도록 강요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외지명표준화위원회의 권고는 강제력이 없다. 그러나 폴란드 정부가 개명 권고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폴란드는 칼리닌그라드 지역에 대한 경계도 강화하고 있다. 칼리닌그라드 지역과 맞대고 있는 232㎞ 길이의 국경선에 2.5m 높이의 철조망을 세웠으며, 지난달부터는 감시 카메라 설치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또 러시아 전차의 진격에 대비해 대전차 방해물도 세워놓고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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