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때 인종차별에 의한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스위스에서 ‘익명 이력서’ 제도가 이번달부터 시범적으로 실시된다.
익명 이력서 제도란 취업 서류에 이름, 나이, 성별, 사진 등의 선천적 인적 정보는 기재하지 않고, 오로지 학력, 경력, 자격증 등의 후천적 인적 정보만으로 사원을 선발하는 것이다. 이는 몇 년 전 프랑스 일부 기업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바 있다.
스위스의 제네바 칸톤(다른 나라의 주에 해당) 정부는 3개월 동안 몇 개의 대형 민간기업과 공기업에서 이 제도를 시범적으로 시행해 본 뒤, 그 결과를 보고 확대 시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스위스가 익명 이력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게 된 것은 독일, 프랑스에 이어 스위스에서도 인종차별 문제가 점점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스위스 뇌샤텔대학이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스위스에 사는 동유럽 및 터키계 이민자의 50% 이상이 취업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익명이력서 제도만으로는 인종차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제도로 서류전형에서 통과하더라도, 면접이나 수습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동유럽계 이민 2세인 이오아나 라두쿠(29)는 “스위스를 비롯한 서유럽 선진국들이 그동안 누려온 풍요로움에는 저임금으로 일해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공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스위스인들의 배타적 시선이 우선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네바/윤석준 통신원 sem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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