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고용계약제에 반대하는 프랑스 학생들이 3일 파리 에펠탑 아래서 서로 손을 잡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리/AP 연합
내부서 철회론 고개…시위대 “항복 머잖아” 들떠
집권당 부총재 “이제 끝났다”
프랑스 정부의 최초고용계약제(CPE) 도입에 대한 노동자·학생들의 저항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집권당 내부에서 철회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우파 정부의 ‘항복’이 머지 않았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4일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 32개 도시에서는 지난달 28일 200만명의 노동자·학생이 거리로 나온 ‘검은 화요일’에 버금가는 총파업과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파리 지하철의 3분의 1과 철도의 절반이 운행되지 않았고, 항공기 결항이 속출했다. 선로와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게릴라식 시위가 지난주부터 이어지고 있다.
68혁명 이후 최대, 또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큰 시위 규모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최초고용계약제 의회 통과 직후 소르본대 학생 400여명의 학교 점거농성으로 시작된 이번 시위 규모는 수만명에서 수십만명, 이후 백만명 단위로 커졌다.
지난달 31일 ‘26살 미만 첫 취업자를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사유를 밝히게’ 한 타협안을 제시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무조건 철폐’를 요구하는 역풍을 만나 뒷전으로 물러났다.
이 제도 도입을 주도한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는 통제력과 조정력을 잃었다. 그의 경쟁자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노조와 접촉하며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언론은 “총리가 둘이냐”고 비꼬고 있다.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에두아르 발라뒤르 부총재(전 총리)는 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초고용계약제는 사라져버렸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며 ‘사망 진단서’를 발부했다.
또 다른 부총재인 파트리크 데베지앙도 〈리베라시옹〉 인터뷰에서 “최초고용계약제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학생조직 대표 브뤼노 쥘리아르는 “승리가 눈앞에 있다”고 외치고 있다.
이번 사태는 12년 전 좌우 동거정부 총리였던 발라뒤르가 들고 나온 청년실업 대책 파문과 99% 닮았다. 1994년 당시 15~24살 청년실업률은 23%로 지금과 같았고, 대선을 1년여 앞둔 점도 마찬가지였다.
발라뒤르 전 총리는 고용주들한테 청년층에게 최저임금을 밑도는 보수를 지급할 수 있는 길을 터주려고 했다. 당시 한달간의 격렬한 저항이 이를 좌절시켰다.
프랑스 우파 정부의 노동시장과 복지, 교육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개혁’ 시도는 그때마다 노동자·학생·시민 반발에 물거품이 돼왔다. 95년 알랭 쥐페 당시 총리는 세금·의료비 인상 등을 담은 ‘연금개혁’을 단행하려다 파업과 시위라는 장벽을 만나 단념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실용기술’ 교육을 강화하는 교육개혁안을 들고 나왔다가 교사와 학생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미국와 영국의 일보 언론은 이번 사태가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점에서 기득권에 저항한 68혁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지체되면 경제가 돌이키기 어려운 난국에 빠질 것이며, 프랑스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반시장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지적도 한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자 학생들은 이번 대책이 취업 통계에 들락거리는 숫자를 늘려 착시 현상을 만들려는 대선용 상품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여론을 호도하는 효과만 내고 노동의 질은 떨어뜨린다는 논리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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