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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소피아 로렌'의 남자라 행복했어요

등록 2007-01-11 19:14

카를로 폰티와 소피아 로렌
카를로 폰티와 소피아 로렌
`닥터 지바고'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 사망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의 남편이자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영화 제작자인 카를로 폰티(94)가 9일 사망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1912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1938년부터 50여년 동안 <닥터 지바고> <길>(La Strada) 등 모두 150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대중들에게 이탈리아의 육체파 여배우인 소피아 로렌의 유일한 남편으로 더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폰티는 1952년 당시 불과 17살이던 소피아 라자로를 미인대회 심사위원석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나폴리 빈민가 출신인 이 선이 굵은 미녀에게 한 표를 던졌음은 물론이다. 이후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성 영화에 라자로를 기용했다. 그리고 성도 로렌으로 바꿔 불렀다.

하지만 20살 어린 로렌과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험난했다. 그는 유부남이었고 당시 그의 고국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로렌과의 사랑을 철저히 비밀로 한 뒤, 1957년 멕시코에서 양쪽 변호사만을 내세운 채 신랑·신부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이 사실이 이탈리아 언론에 알려진 뒤 콘티는 중혼 혐의로 기소당했다.

로렌은 당시를 “나는 끝없는 지옥불과 파문의 위협에 처해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공공의 죄인들로 손가락질했다”고 회상했다. 로렌은 이 결혼식에 대해 “몇시간 동안 울었던 기억 밖에 없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결혼식 이후 타국을 떠돌았고, 결국 멕시코 결혼을 무효화한 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사랑의 곡절’은 프랑스 시민권 획득으로 결말을 맺었다. 조르주 퐁피두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배려로 시민권을 받은 뒤, 1966년 파리에서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호사가들은 폰티의 여배우 편력과 로렌 주위를 맴돌았던 많은 남자들을 떠올리며 결혼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예측은 어긋났다.

폰티는 로렌 뿐 아니라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걸출한 이탈리아 배우를 발굴하고 키웠다. 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다. 하지만 그는 폐렴 합병증으로 9일 저녁 스위스 제네바의 한 병원에서 사망할 때까지 아내와 함께 했다. 로렌이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을 지켜봤다고 친지들은 전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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