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계 자국인 납치 혐의
유럽국-미국 마찰 확산될 듯
유럽국-미국 마찰 확산될 듯
독일 법원이 31일 레바논계 독일인을 납치한 혐의로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13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독일과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독일 사법당국의 이번 조처로, CIA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유럽 대륙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여온 각종 불법행위를 둘러싼 유럽 나라들과 미국의 마찰이 확산할 전망이다.
독일 검찰은 CIA ‘납치팀’에 소속된 이들 요원이 테러단체 알카에다 연루 혐의로 2003년 마케도니아에서 레바논계 독일인 할레드 엘-마스리를 납치한 뒤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송해 가혹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엘-마스리를 카불로 이송하면서 항공기에 승무원과 승객을 가장해 탑승했던 것으로 독일 검찰은 보고 있다. CIA는 엘-마스리를 5개월 동안 구금됐다가 혐의가 입증되지 않자 풀어줬다. 엘-마스리 사건은 테러 용의자를 외국에서 납치해 제3국 감옥에 가두고 고문·구타 등 불법행위를 저질러온 CIA 관행의 대표적 사례다.
독일 의회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독일 정부가 CIA의 독일인 불법 납치·구금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하려 한 혐의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의회 조사에서는 CIA가 입막음을 위해 엘-마스리에게 돈을 지불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독일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됐지만,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이들 요원을 독일 쪽에 인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재판은 파행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검찰도 2003년 이집트 성직자를 납치한 혐의로 CIA 요원 25명과 전 이탈리아 정보책임자에 대한 기소를 추진 중이다. 스페인 법원은 31일 스페인 정보당국에 CIA의 납치와 관련된 자료를 공개하도록 명령했다.
박중언 기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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