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은?
러시아 하원 ‘가스프롬 사병조직 허용’ 법안 통과
2014년 겨울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소치의 후원사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 가스프롬이 군사 조직까지 두기로 해 무소불위의 힘을 다시 과시했다.
러시아 하원(두마)은 4일 가스프롬과 국영 송유관 운영기업인 트란스네프트에 대해 사병조직 금지 법조항을 특별히 면제해주는 법안을 통과시켜 자체 사병조직 창설을 허용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법안은 연방법원 승인과 대통령 서명을 거쳐 곧 발효될 예정이다.
이들 기업이 보유한 대규모 가스전과 유전, 에너지 수송망을 테러조직의 공격에서 보호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게 목표다. 새 법안에 따라 가스프롬과 트란스네프트는 사설 보안회사의 무장요원들을 고용하지 않고, 직접 무장조직을 조직해 지휘하게 된다. 병력 수의 제한은 없다. 무기는 권총과 엽총으로 한정됐고, 내무부가 제공하는 정부군 총기를 사용하게 된다. 가스프롬이 관할하는 15만3천㎞의 가스관이 러시아 극동부터 유럽까지 이어져 있어 사실상 이 지역 전체가 활동권이다.
이번 조처는 ‘친정부 사병조직’ 양성이라는 논란을 부르고 있다. 좌파 계열인 정의러시아당의 겐나디 구드코프 의원은 이날 의회에서 “이 법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며 “기업에 자체 사병조직을 만드는 선례를 주는 이 법이 통과되면 우리 모두는 가스프롬과 트란스네프트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가스프롬이 국제 가스 공급을 좌우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힘의 원천’ 구실을 해왔다는 점에서 정치적 파장도 적지 않다. ‘국가 안의 국가’로 불리는 가스프롬 이사회 회장은 푸틴 대통령의 후계자로 유력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제1부총리다. 푸틴 대통령이 퇴임 뒤 가스프롬 회장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크레믈(러시아 대통령궁)이 러시아의 가장 강력한 기업 안에 사병조직을 창설하는 것은 가스프롬이 가스 기업의 본래 영역을 훨씬 넘어 권력기반을 재구축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스프롬의 사병조직은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의 경쟁이 빚은 산물이기도 하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최근 서방 에너지 기업인 로열더치셸, 비피 등에 무장세력의 공격과 납치 등으로부터 보호막이 돼 줄 해상신속기동군을 배치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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