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각위기 총리, 신임투표 제안
상원 통과 불투명해 혼란 지속
상원 통과 불투명해 혼란 지속
실각 위기에 놓인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가 승부수를 던졌다. 프로디 총리는 22일 “의원들만이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며, 집권 연정에 대한 상·하원의 신임투표를 제안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프로디 총리가 20달 동안 이끌어온 중도좌파 연립정부는, 부패 혐의를 받은 클레멘테 마스텔라 법무장관이 지난주 사임하면서 좌초 위기에 내몰렸다. 기민당(UDEUR)을 이끌고 있는 마스텔라 전 장관은 사임 뒤, 전격적으로 “프로디 총리 지지를 접고, 기민당의 연정 참여를 철회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지휘하는 야당 세력에 동참해, 조기 총선 요구에 힘을 싣고 나섰다.
하지만 연정을 지지하던 마스텔라 장관이 분명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갑작스레 탈퇴를 선언해, ‘민감한’ 추측마저 나온다. 현지 일간 <라스탐파>는 그의 연정 탈퇴에 바티칸(교황청)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프로디 정부가 동성애·낙태 등 문제에서 진보적 모습을 보이면서 교황청과 대립한 게 이유라는 것이다. 공산당의 프랑코 지오다노 의원은 “마스텔라는 바티칸의 확성기”라며 “그의 태도 변경은 (바티칸의) 지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기민당 의석의 비율은 1.4%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디 정부는 하원에선 기민당이 이탈하더라도 여전히 넉넉한 다수당이다. 그러나 상원에선 과반에 2석이 못미친다. 이 때문에 24일 상원의 신임 투표는 낙관하기 어렵다. 결국 선출직이 아닌 까닭에 비교적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종신의원 7명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연정의 미래가 달려 있다. 최근 몇 차례 투표에서 이들 가운데 다수는 프로디를 지지했다.
프로디가 신임투표의 관문을 통과한다 하더라도, 여야 대치가 심각한 상태여서 연정이 오래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이 과도정부 구성, 총선 실시 등의 새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디 정부 붕괴 이후 집권이 유력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에 대한 중도좌파 세력의 반대가 만만찮다. 또 대통령 스스로도 선거법 개정 전에는 선거를 치르지 않겠다고 선언해 왔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정국 혼란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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