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미국발 금융위기’에 그 어떤 나라보다도 크게 휘청이고 있다. 지난달 그루지야와 전쟁으로 촉발된 정치적 리스크에 유가까지 하락하면서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루지야 전쟁으로 인한 서방과의 대립에서 러시아의 최대 복병은 ‘경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에 좀 더 힘이 실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는 17일 미국발 금융위기로 초래된 증시급락과 관련해, 2~3일 내로 시장안정을 위한 조처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러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따 “위기의 징후가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대부분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어제 긴급회의에서 시장안정 조처에 합의했고, 2~3일 내에 이고르 슈발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가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모스크바 증권거래소 MICEX 지수(루블화 연동)가 17.5%나 떨어진 881.17 포인트를 기록했고, 장중 20%가 폭락하면서 당국이 거래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모스크바 타임스>가 17일 전했다. 하루 낙폭으로는 1998년 8월 금융위기 이래 가장 큰 폭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이날 RTS 지수(달러 연동)도 11.5%가 떨어진 1132.1포인트를 기록해 1100선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러시아의 최대 원유생산업체인 로즈네프트의 주가는 22% 하락했고, 가스생산업체 가즈프롬의 주가도 18% 떨어졌다.
러시아는 이미 그루지야 전쟁으로 인한 외국자본 이탈로 증시 폭락을 겪고 있다. 그루지야 전쟁 뒤, 조심스럽게 관측됐던 ‘제2의 루블 위기’도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지난 수년간 ‘오일머니’로 부를 축적한 러시아로선 유가하락도 적잖은 난제다. 한때 배럴당 150달러를 육박하던 국제유가는 16일 92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에너지 기업들의 실적에 영향을 크게 받는 러시아 증시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16일 모스크바 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들은 “오로지 한쪽 흐름만 계속된 날이다. 매수인은 없고 매도인만 넘쳐났다”고 전했다. 위기상황을 반영하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이날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과거 몇년 동안 러시아 경제가 일궈온 안정성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토하고 있으며, 신중하게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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