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국, 금융감독·위기관리 새기구 설립 검토
경제규제 ‘새 틀’ 가속화…소극적 미국 ‘변수’
경제규제 ‘새 틀’ 가속화…소극적 미국 ‘변수’
새로운 자본주의 규제 시스템이 될 ‘신브레턴우즈’ 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유럽연합(EU)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유럽연합 순회의장국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담을 끝낸 뒤, “오는 18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세계금융 시스템의 재편을 위해 폭넓은 의견을 나눌 것”이라며 “금융권 임원들의 보수정책에서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새로운 역할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은 다음달 신브레턴우즈 체제를 위해 국제사회가 정상회담을 열기 바란다고 밝혔다.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인 44개국 대표단이 국제통화기금(IMF)과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등의 창설을 주도한 브레턴우즈 협정을 맺었던 것처럼, 유럽 각국 정상들은 21세기판 브레턴우즈 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유럽 국가들은 역내 공동 금융감독 시스템과 금융위기 관리기구의 설립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이날 전했다. 이를 위해 각국 중앙은행장들이 최소한 한 달에 한 차례씩 모여 금융감독에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신브레턴우즈 체제가 최소한 30개 이상의 대형 은행과 금융기관에 대한 국제적 감시를 수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가장 먼저 신브레턴우즈 체제를 제안했던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문제를 예견할 수 있는 조기 경보 시스템 △국경을 넘나들며 거래하는 세계 30위권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등이 설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블룸버그 뉴스>는 유럽국가들이 주도하는 신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으로부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럽국가들은 15~16일 정상회담에서 상대적으로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는 것처럼 보였다.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16일 “현 금융 위기는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유럽 정상들은 다음달 4일 미국 대선이 끝난 뒤에, 뉴욕에서 신흥경제국들도 참여한 가운데 정상회담을 열길 바라고 있다.
런던의 국립경제사회연구소의 마틴 윌은 “미국이 1944년에 원했던 것(브레턴우즈 체제)을 얻었던 것처럼, 유럽이 이번에 그들이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토니 프라토 백악관 대변인은 “연말까지 주요 8개국(G8) 정상들의 회동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유럽국가들의 적극적 태도와 차이를 보였다.
유럽 국가들 내에서도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마찰이 있을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프랑스가 금융감독을 헤지펀드로까지 확장하고 역외 금융센터들을 제거하려 하는 데 대해, 영국은 순순히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수도 런던은 헤지펀드의 본산지나 다름없다. 또 영국은 대형 역외 금융센터를 대표하는 나라지만, 프랑스는 이런 역외센터가 세계적 공조 노력을 피해 가는 회색지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지난 세기 최악의 금융위기가 ‘민첩하게, 세계가 함께 움직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고 전했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금융권에 대한 지원이 늦춰져 치명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과 브레턴우즈 협정으로 세계가 공조를 이룬 탓에 붕괴된 세계경제를 다시 작동시킬 수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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