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시위 진압 경찰이 12일 아테네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에 맞아 불길에 휩싸이자 동료 경찰들이 불을 끄고 있다. 일주일째 격화되고 있는 시위는 이날 오전 잠시 소강을 보이다가 오후 들어 수백명의 청년들이 거리로 나와 다시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은행과 상점을 공격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시위로 100명이 체포되고 70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아테네/AP 연합
주요도시·미국 등 20개국서 ‘폭력집회’까지
청년층 좌절 ‘밑불’…반세계화 단체와 결합
청년층 좌절 ‘밑불’…반세계화 단체와 결합
“그리스 반정부 시위가 (경제위기로 누적된 분노에) 방아쇠를 당겼다.”
프랑스 보르도 주재 그리스 영사인 미켈 코르피아스는 11일 세계적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유럽 청년층의 분노가 그리스 반정부 시위로 분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보르도에선 그리스 시위를 지지하는 청년들이 차량을 불태우고, 주택가를 돌며 페인트로 ‘폭동’이라는 단어를 써내려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그리스의 반정부 시위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한 이래, 잠재된 사회적 불만이 표면으로 드러난 첫번째 사례로 여겨진다. 지난 6일 경찰의 총격으로 15살 소년이 숨진 것을 계기로 촉발된 시위가 단순히 총격사망사건에 대한 항의로 그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타임> 온라인판은 11일 “세계적 금융위기가 부른 예기치 않은 부산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 드러내듯, 그리스 시위대들은 전국적으로 150곳 이상의 은행을 주요한 공격 목표로 삼았다. 반정부 시위가 있기 전, 많은 그리스인들은 정부가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은행을 지원하는 데 350억달러를 쏟아붓기로 한 데 격노했다. 이는 그리스인 5명 가운데 1명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더 격해졌다.
특히 경기침체로 미래가 암울해진 청년층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직업교육 기관의 페넬로페 스타타코풀로스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26~27살이 되도록 집에서 빈둥대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일자리를 얻더라도 고작 한 달에 500유로(약 91만원)짜리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시위대는 일자리 확충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릴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에서 촉발된 대중소요는 유럽 전역으로 번져갈 조짐도 보이고 있다. 11일 현재 유럽과 미국 등 약 20개 나라에서 그리스 반정부 시위에 대한 동조시위가 벌어졌다. 지난 10일 이탈리아 로마의 그리스대사관 주변에선 경찰차가 파손되는 폭력집회가 등장했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도 시위대들이 경찰에 병과 페인트 등을 던져 63명이 한때 구금됐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도 같은 날 시위대가 ‘살인마 경찰’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은행과 상점, 경찰서 등을 습격해 11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유럽 정부들은 그리스 시위와는 다른 양상이라며 축소 해석하고 있지만, 자칫 자국의 반정부 시위로 확산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동조시위는 반세계화 단체들과 결합되고 있어, 금융위기의 주범인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항의시위로 성격이 바뀌는 양상이다. 유럽의 대안미디어 사이트인 ‘인디미디어’에는 “거리를 접수하자” “당신의 재산을 약탈한 은행을 불태우라” “유럽 전역에서 혁명을 확산시킬 중요한 기회가 왔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청년층의 불만을 시위로 조직하고 있다고 <에이피> 통신이 전했다.
<타임>은 “(일련의 시위가)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회의가 열린 미국 시애틀에서 풀뿌리 단체들에 의해 조직된 반세계화 시위와도 관련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세계화 시위는 2001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이탈리아인 시위대가 사망하며 정점을 이뤘지만,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주춤해졌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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