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8월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공습 경보가 나오자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황급히 대피하고 있다. 고리/AP 연합
[뉴스 뒤 사람들]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
“유럽과 한가족이 되기 위해 속도를 내겠다.”
지난 8월 러시아와 닷새간 전쟁을 시작한 미하일 사카슈빌리(사진) 그루지야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건넨 말이다. 미 국무부 장학생 출신으로 철저한 친미주의자인 그는 <시엔엔>(CNN) 등에 출연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서방의 지지를 호소했지만 부질없었다. 그루지야는 당시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남오세티야를 침공했지만, 군사적으로 압도적 우위인 러시아에 대패했다. 사카슈빌리는 절박하게 지원을 호소했지만,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서방 국가들의 지지는 외교적 수사에 그쳤다.
인구 460만명의 소국 그루지야는 결국 ‘대통령의 오판으로 힘든 시기를 겪은 나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타임>은 최근 ‘올해의 문제 인물 20인’에 사카슈빌리를 포함시켰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전력으로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사카슈빌리가 스스로를 ‘러시아라는 골리앗에 덤빈 현대판 다윗’으로 여겼다”는 비웃음이 덧달렸다.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카슈빌리는 전쟁 넉 달이 지난 현재, 국내에서 전방위로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달 7일 수도 트빌리시에선 수만명의 시위대가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로이터> 통신은 “전쟁의 실패와 세계적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가 정부에 대한 불만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8일 그루지야 의회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정부가 큰 실수를 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루지야의 침공이 우발적이었던 반면, 러시아의 개입은 준비된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사카슈빌리는 퇴진 압박에도 아랑곳 않고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최근 ‘올해 당신이 놓친 10대 뉴스’를 소개하면서, 그루지야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원조받은 전쟁복구비 10억달러 가운데 1억7600만달러를 기업 대출자금으로 쏟아부은 사실을 전했다. 이 가운데 3천만달러는 전쟁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수도 트빌리시의 최고급 호텔을 짓는 데 쓰였다. <포린폴리시>는 “사카슈빌리의 남오세티야 침공이 많은 국민들에겐 재앙이 됐을지 모르지만, 트빌리시의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겐 호재가 됐다”고 비판했다.
사카슈빌리는 내년 1월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될 존 케리와 접촉하는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미국과 더 가까운 동맹국이 돼야 한다”고만 되뇌이고 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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