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베르트 하임.
2차 세계대전 동안 생체실험을 통해 수많은 유대인들을 살해한 나치의 ‘죽음의 의사’ 아리베르트 하임이 정의의 심판을 피한 채, 지난 92년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독일 공영방송인 <체데에프>(ZDF)와 <뉴욕타임스>가 4일 보도했다.
오스트리아에 있던 나치의 마우타우센 수용소에서 마취하지 않은 채 유대인 수용자들의 신체를 절단하고, 장기를 적출하고, 심장에 휘발유나 독극물을 주사한 뒤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측정하는 등 잔혹한 생체실험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940년대에 히틀러의 친위대에 들어간 하임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잔학 행위를 저지른 뒤, 종전과 함께 미군에 붙잡혔지만 2년 뒤 석방됐다. 이후, 독일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하다 1962년 독일 당국이 그의 전범 혐의를 포착하고 체포 움직임을 보이자 행적을 감췄다. 나치 전범중 최고 거물인 하임은 프랑스와 스페인, 모로코를 거쳐 이집트로 갔으며,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타렉 파리드 후세인이라는 가명으로 살다가 1992년 8월 10일 카이로에서 직장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임이 머물렀다는 카이로의 호텔 방에서는 그의 이집트 여권과 거주허가 신청서, 개인 편지들이 담긴 서류 가방이 발견됐다. 호텔 주인은 하임이 나치 전범인줄 몰랐다며, 그가 ‘타렉 아저씨’라고 불리는 가족 같은 손님이었다고 말했다. 카이로의 지인들은 하임이 생전에 아마추어 사진가로 항상 주변 사진을 찍으면서도, 남이 자신의 사진을 절대 찍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하임의 아들인 뤼디거는 지난 90년 직장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카이로에 왔었으며, 그의 임종도 지켜봤다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뤼디거는 하임의 사망이 확정되면, 하임의 명의인 120만 유로(약 21억원)의 통장 등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
나치 전범 추적자인 에프라임 주로프는 보도 내용이 신빙성이 있어보이지만 하임의 무덤과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그가 죽었다고 확인할 수 없다며, “만약 하임이 처벌 받지 않은 채 삶을 마감했다며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