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야 에스테미로바
괴한들 납치뒤 살해…인권단체 “체첸 대통령이 배후”
3년전 피살 기자와 친분…미 백악관 “법치파괴 사건”
3년전 피살 기자와 친분…미 백악관 “법치파괴 사건”
‘인권 암흑지대’ 체첸에서 ‘백색 테러’ 악몽이 되풀이되고 있다. 체첸의 유명한 인권운동가 나탈리야 에스테미로바(50)가 15일 납치된 뒤 살해당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이날 아침 체첸 수도 그로즈니의 집 앞에서 괴한 4명에게 납치당하는 것이 목격됐다. 차에 강제로 끌려가면서 소리를 질렀으나 소용없었다. 8시간 뒤 80㎞ 떨어진 고속도로 옆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러시아 당국은 “가슴과 머리에 총상이 있었다”고 밝혔다. 체첸과 러시아의 ‘백색 테러’ 악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체첸전쟁 참상을 고발했던 언론인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3년 전 자신의 아파트에서 총을 맞고 숨졌다. 올해 1월에는 인권변호사인 스타니슬라프 마르켈로프가 러시아 군인의 체첸 소녀 성폭행 재판 관련 기자회견 뒤 모스크바 시내에서 대낮에 총격을 받고 숨졌다. 역사 교사였던 에스테미로바는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대통령 주도로 시작된 1999년 제2차 체첸전쟁 이후 체첸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태를 고발해왔다. 2000년 인권운동단체 ‘메모리얼’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숨진 안나 폴릿콥스카야 기자와는 친구 사이였다. 에스테미로바는 러시아군과 체첸공화국군들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수백 건의 납치·고문·살해사건에 대해 증거를 수집해왔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그는 스웨덴 의회와 유럽 의회에서 상을 받았으며, 2007년 안나 폴릿콥스카야상의 첫째 수상자였다. 러시아 정부는 강력한 처벌 의지를 밝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범인들을 강력히 처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도 “범인들에게 용서는 없을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에스테미로바가 일했던 인권단체 메모리얼은 “(친러시아 성향의) 람잔 카디로프 대통령이 에스테미로바를 위협해왔으며, 자신의 적으로 여겼다”며 배후가 카디로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메모리얼은 체첸에서 올해 1월부터 50여건의 납치사건이 있었고 적어도 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메모리얼은 납치사건 대부분이 체첸 정부와 관련된 이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규탄하고 나섰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며, 러시아연방 수사기관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백악관은 “잔혹한 살해행위를 우려한다”며 “이번 사건은 (체첸이 있는) 북부 코카서스 지방의 법치와 안전의 파괴를 보여준다”는 성명을 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6일 범죄자를 체포하고 처벌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러시아에 촉구했다. 에스테미로바는 평소 친구인 폴릿콥스카야처럼 자신도 살해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왔다. 2007년 <비비시>(BBC)와의 인터뷰에서 “나와 가족들의 안전에 대해 걱정이 된다. 그러나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스테미로바는 15살 난 딸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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