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이후 28만건 보고…“어른 잣대로 무리한 낙인” 비판도
“흰둥이 쓰레기야!”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소녀가 점심시간에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소년에게 갑자기 욕을 건넸다. 소녀는 즉시 선생에게 불려갔다. 선생은 보고서의 인종차별 가해자란에 소녀의 이름과 소녀가 뱉은 말, 희생자란에 소년의 이름을 채워 넣었다. 교장에게 보고했고, 소녀의 부모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어린 소녀는 자신이 친구에게 인종차별적 욕설을 했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많은 이민자의 유입으로 다문화사회가 된 영국의 초등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는 매년 영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4만건의 인종차별이 보고된다고 29일 보도했다. 영국은 학교를 포함한 모든 공공기관에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지난 2000년 ‘인종관계법’을 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전국 모든 초·중·고등학교는 양식을 갖춰 인종차별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2002년 이후 지금까지 보고 건수는 무려 28만건에 이른다. 가해자의 나이대는 주로 9~11살에 몰려 있다.
학교는 가해 어린이들을 따로 모아 교육을 하거나 심한 경우엔 처벌을 내린다. 2006~2007년 사이 4410명의 학생들이 퇴학이나 휴학 처분을 받았다. 검찰청은 2007~2008년 10~17살 청소년 2916명을 인종 및 종교적 증외 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그 전 2년 동안의 404명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어른들의 잣대로 무리하게 아이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종주의자 아이들에 대한 신화>를 펴낸 아드리안 하트는 “지금과 같은 반인종주의 보고서 의무 작성은 놀이터 아이들의 욕설을 인종주의 이슈로 변질시켜 아이들을 분열시키고, 되레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